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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허용기준 완화… 어떻게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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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2-18 21:41:41 수정 : 2008-02-18 21: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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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현행 모자보건법상의 낙태(인공임신중절)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신장애나 유전적 결함, 성폭행 등 기존의 허용사유 외에 미혼 임신과 경제적 이유 등 ‘사회적 적응사유’를 추가키로 하자 “불법 낙태 시술이 성행하는 현실을 인정해 개선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결국 낙태 자유화로 이어질 것”이란 반대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에 바람직한 대안 모색을 위해 ‘낙태 허용기준 완화’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들어본다.

피임과 상담, 임신부 지원 대책이 먼저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우리가 ‘살려는 의지’가 있는 것처럼 태아 역시 생존 의지가 있다. 생명체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출산 이후의 존재만이 생명체가 아니다. 자궁 속에서 수정된 단세포 접합자에서부터 배아낭과 배아, 태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명체다. 따라서 태아를 죽이는 것은 성인의 살인이나 다름없다. 물론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부의 자율권이 충돌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허용범위 확대는 임신부의 자율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건강에는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인 측면이 있다. 죽음에도 육체적, 사회적, 정신적, 영적인 죽음이 있다. 우리와 함께해온 ‘숭례문의 죽음’은 육체적 죽음만이 아니다. 수년에 걸쳐 200억원에 복원될 숭례문은 이전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인공임신중절 규제 완화 방안은 낙태를 합법화해 낙태 자유화로 나아갈 위험성이 있다.

이미 사문화된 현행 모자보건법을 현실화하자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정부 정책으로서는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피임과 상담 및 임신부 지원 등의 사회복지 확대 안을 내놓는 것이 먼저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낙태를 예방하는 것이다. ‘보다 선한 삶’을 사는 것이 지름길이다. 우리의 삶은 결코 인과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시대변화에 맞는 합리적 재조정 필요
김주환 홍익대 법학과 교수


최근 정부는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낙태 허용 사유와 범위를 확대해 낙태의 자유를 전면 허용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시대변화에 맞게 합리적으로 재조정하자는 것으로 이해된다.

현재 이 법의 허용 규정을 넘어선 낙태범죄가 횡행하고 있고 거의 이를 처벌하지도 않고 있다. 한 해 낙태건수가 34만건에 달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그 합법화의 범위를 재조정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사실 낙태 문제를 생명권의 문제로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종교·도덕적 차원을 넘어 법적 차원에서까지 ‘절대적 낙태금지’로 반드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태아의 생명과 임신부의 생명이 충돌할 때 언제나 태아의 생명이 우선한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가피하다면 낙태를 허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상충하는 법익을 실천적으로 조화하는 데 있다.

하지만 ‘사회적 적응 사유’를 낙태 허용 사유로 추가하려면 신중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임신부의 사회적 적응이 태아의 생명보다 우월한 가치인지, 아니면 양자 사이에 적어도 등가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우자의 동의 없이 임신부가 단독으로 낙태하도록 허용하는 것도 때에 따라서는 배우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동의가 필요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김주환 홍익대 법학과 교수



‘사회·경제적 허용사유’ 조항 악용소지 농후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 부회장


현행 형법에서는 낙태가 불법이지만 인공임신중절 허용 기준을 둔 모자보건법 제14조는 낙태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와 가톨릭단체들은 모자보건법을 개정하자는 서명운동과 더불어 개정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기도 했다. 뒤늦게 보건복지부에서 낙태를 조장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을 연구하기 시작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 개정안에 배우자 동의 없이 낙태를 결정할 수 있게 하고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로도 낙태를 허용하자는 내용이 추가로 포함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사회·경제적 허용 사유는 너무 애매모호한 조항이라 산모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많다. 낙태율을 줄이려고 시작한 연구가 여성이 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낙태를 좀 더 쉽게 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처럼 낙태 허용 사유를 확대한다면 결국 낙태를 전면적으로 자유화하는 것이 되고 만다.

‘현실에 맞게’ 해야 할 일은 낙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낙태에 이르지 않도록 여성이나 태아를 보호하는 일이다. 산부인과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의사들이 의학지식과 생명윤리에 어긋나지 않게 양심껏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의료수가체계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산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임신 여성에게 적절한 상담을 해주고, 미혼모들이 출산 후 태아의 생명을 지킬 수 있게 사회적 지원을 확충하며, 올바른 성교육 등을 위해 사회·제도적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 부회장



원치 않는 임신에 대응할 권리도 보장돼야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인간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입장이 공존하며 이것은 여전히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이 중 수정란이 형성되는 순간을 생명의 시작점으로 천명하고 낙태는 살인행위라고 주장하는 생명존중론자에게 그 숭고한 생명존중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은 때가 많다.

수정란의 생명이 갖는 숭고함에 비해 수정란을 사회적 존재로 키워내는 여성의 살아 숨 쉬는 몸에 대한 존중은 늘 도외시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 특히 그렇다. 저출산을 극복하는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에는 국가의 인구정책에 이용돼 온 여성 신체의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생명존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는 생명보다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마련하지 못해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동반자살하고, 치료비가 없어 삶을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삶 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숭고한 삶을 위해선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도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사회적 편견이나 제도적 지원의 미비로 어쩔 수 없이 임신중절을 해야 하거나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합리적인 선택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자기 삶을 기획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조차 마련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윤상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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