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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검증절차 철저하고 까다로워

인사검증 철저할수록 사회 투명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미국에서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기 전에 실시하는 검증 절차를 베팅 프로세스(vetting process)라고 한다. 이 말은 원래 경마에서 나왔다. 출전하는 말이 제대로 잘 달릴 수 있는지 건강 검진을 하는 절차가 베팅 프로세스이다. 이 말이 1900년대 초부터 공직자 검증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말이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고위 공직자가 공공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몇몇 장관 후보들이 검증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논문 중복 게재, 탈세, 위장전입, 병역 문제 등이 논란의 초점이다. 그 당시에는 다 그렇게 했다는 식의 동정론도 있고, 공직자가 그러면 안 된다는 원칙론도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와 정보화의 진전으로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과거 행태가 갈수록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제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고 고위 공직 진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미국의 공직 검증 절차를 보면 한국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지난달 말 현재 상원의 인준이 필요한 500여개의 고위직 중에서 43%를 채웠을 뿐이다. 그만큼 검증 절차가 철저하고 까다롭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임기가 4년인데 첫 1년을 적임자를 찾는 데 보낼 정도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여름 아프리카를 방문하면서 국제개발처(USAID)의 처장을 데려갈 수 없었다. 그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외교의 핵심 현안이 원조 문제이지만 그 책임자가 아직 없다. 클린턴 장관은 당시에 “백악관의 검증 절차가 악몽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지난 8개월 동안 글로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차관, 차관보급 등 고위 참모들이 없어 ‘원맨쇼’를 해왔다.

미국에서 정무직 고위 공직자 후보에 오르면 우선 7쪽짜리 자기 신고서를 내야 한다. 여기에는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하는 63개의 문항이 있다. 본인과 가족이 받은 50달러 이상의 선물 내역도 신고해야 한다.

특히 이메일, 페이스북 등 온라인으로 통신한 내용 중에서 문제가 될 만한 글을 남긴 적이 있는지 묻는 항목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만다. 지난 10여년 동안 친구,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 얼마든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그런 메일을 모두 공개하라고 하면 움찔하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신고서를 내면 이를 토대로 연방수사국(FBI)이 몇 개월 또는 1년이 넘도록 뒷조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백악관은 8개월이 지났지만 고위 공직자 후보 명단을 의회에 보내지조차 못하고 있다.

미국 정치 현장을 취재하면서 이런 비효율적인 검증 절차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미국의 여러 공직자들에게 도대체 왜 그렇게 하느냐고 여러 번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기자는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고위직이 아니라 미관말직을 채용하는 데도 비슷한 절차를 밟는다는 사실을 알고나서야 왜 그들이 시큰둥하게 답변했는지 이해하게 됐다. 미국에서 연방 또는 지방 정부의 공무원이 되려고 원서를 낸 사람들은 줄잡아 1년이 넘도록 조사를 받는다.

공무원 한 사람을 채용하는 데 서너 사람의 기존 공무원이 매달려 6개월이고 1년이고 뒷조사를 하고 다닌다. 최근 연방 정부에 들어가려 했던 한반도 문제 전문가는 면접을 하면서 거짓말 탐지기를 온몸에 부착한 채 답변을 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공직자 비리 사건이 한국과 비교할 때 거의 일어나지 않는 데는 이런 혹독한 검증 절차가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인사 검증을 철저하게 할수록 사회가 투명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투명한 사회로 가기 위한 부단한 과정에 들어섰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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