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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정신건강 치료 기준의 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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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9 23:08:49 수정 : 2025-02-19 23: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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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범죄 야기 원인인 것처럼 뉴스 쏟아져
4명 중 1명 우울증 환자, 치료 거부할까 우려돼

지금 나는 책상에 앉아 이제껏 진료했던 선생님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과 내게 들려준 인상적인 이야기가 하나둘 떠오른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오랫동안 피로가 쌓여 있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미 지쳐 있었지만, 일을 줄일 수 없어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또 다른 선생님은 수업 외 행정 업무까지 늘어나면서 번아웃에 빠졌다. 필수 업무만 하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자연히 호전될 수 있었지만, “제 일만 줄여 달라고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잖아요”라며 체념하듯 말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작년에 처음 교직을 시작했던 건장한 체격의 남자 교사에게 어떤 문제로 병원에 왔느냐고 묻자 “중학생들을 통솔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좌절감이 쌓이다 보니 우울해졌어요.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내게 맞지 않는 일 같아요”라고 말했다.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걸린 선생님도 있었다. 마음이 여리고 불안에 자주 시달리던 여교사는 2023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초등학교 교사의 교내 자살 사건이 발생한 후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며 퇴직을 했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일정 기간 요양가료(療養加療)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담은 진단서를 발급해 준 선생님도 여럿 있었다. 이들 중 누구도 타인을 해치겠다고 하거나, 그럴 만한 공격성이 있다고 판단된 사례는 없었다. 교단을 떠나고 싶어했지, 학교를 찾아가 폭력을 휘두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학생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탓했다.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이 떨어지고 신체적 기운도 없어져서 누군가를 공격하는 행동을 하기 힘들어진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신을 괴롭힐지언정, 타인을 위협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중범죄율은 우울증 환자와 일반인 간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폭력의 원인이 고혈압이나 당뇨가 아닌 것처럼, 범죄 행동의 원인이 우울증일 수는 없다. 잔혹한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일 뿐이며, 정신질환과는 상관이 없다. 우울증이 범죄의 면책 사유가 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잔혹한 범죄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병력이 함께 알려지면서, 마치 우울증이 잔혹한 행위를 불러일으킨 원인인 것처럼 보도되는 뉴스가 연달아 쏟아졌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우울증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편견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우울증의 평생 유병률은 25%다. 네 명이 모여 있으면 그중 한 명은 이미 우울증 환자이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우울증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비율은 고작 11%에 불과하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범죄 사건과 그것이 초래한 사회적 파장으로 인해 이 수치가 더 떨어질까 봐 염려된다.

‘2023년 교사의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3505명 중 60% 이상이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보고한 이들도 16%에 달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잠재적 위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마음 건강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다.

정신건강 치료의 기준이, 우리 사회에서 한 개인의 정체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오인되어 온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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