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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권좌에서 내려온 2023년 4월 유명인사들에게 40여년간 받은 친서 150점을 모아 책을 냈다. 재임 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보낸 편지도 담겼는데, 트럼프는 출간 전 기자들과 만나 “나는 그를 ‘로켓맨’과 ‘리틀 로켓맨’으로 불렀다. 그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게 통했고, 그가 실제로 전화를 걸어 올림픽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선수단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보내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된 게 “아주 심각한 상황을 진정시킨 공로”라고 공치사하면서 언급한 말이다.
트럼프만큼 국제사회가 ‘약육강식의 정글’임을 적나라하게 확인시켜 주는 인물이 또 있을까. 1기 집권 초기인 2017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던 그는 이 책에선 180도 달라진 인식을 보였다. “한국, 중국, 러시아 사이에 있는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선을 갖고 있다. 부동산 사업에서는 그것을 훌륭한 입지라고 한다”며 북·미 핵 협상을 타결하고 경제협력까지 나아가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안타깝게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김 위원장만큼 브로맨스를 쌓지 못한 모양이다. 트럼프는 19일(현지시간) “선거를 치르지 않은 독재자 젤렌스키는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이번 전쟁을 젤렌스키의 탓으로 돌리면서 “미국은 (전쟁에) 3500억달러를 지출하고도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진짜 독재자인 김정은이 ‘유경험자’로서 젤렌스키에게 트럼프 다루는 법을 조언할 수 있다면 당장 전화해 요구대로 5000억달러 규모로 추정되는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지분 50%를 넘기라고 했을까. 트럼프는 정계 입문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영향력이 센 철권통치자나 독재자를 상대로 곧잘 호의적인 발언을 내놓곤 했다. 그의 행보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엄한 국제현실과 더불어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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