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올라 “국민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눈물
손에 잡힐 듯한 정상은 멀고 또 험난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상 등정을 향한 발걸음은 악전고투의 시간이었다.
27일 오후 6시쯤(한국시각) 안나푸르나(8091m) 정상 주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의 마지막 목표인 안나푸르나에 오르는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눈으로 뒤덮인 정상 주변은 절벽에 가깝도록 경사가 심했고 중간에 산사태를 몇 번이나 만났다. 느닷없이 덮쳐오는 안개에 정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오 대장은 한두 걸음을 옮기고는 숨을 골라야 할 정도로 고행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정상 주변은 날씨가 쾌청했지만 섭씨 영하 30도의 차가운 날씨에 초속 10m가 넘는 바람은 키 155㎝, 몸무게 50kg밖에 되지 않는 오 대장이 견디기 어려워 보였다.
오 대장은 폐를 찢는 듯한 차가운 공기뿐 아니라 피로와도 싸우고 있었다. 수차례 눈사태와 사투를 벌인 탓인지 몸은 더욱 무거워 보였다.
전날 11시간에 걸쳐 정상 밑에 설치된 캠프4(7200m)에 도착한 오 대장은 3시간 정도만 눈을 붙이고서 이날 13시간여 동안 걸었다. 빨간 방한 점퍼를 입은 오 대장은 등정 도중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춥고 졸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고통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 정상은 오 대장의 등을 떠밀었다. 정상을 10m가량 앞둔 그는 이미 체력이 바닥났지만 정신력으로 성큼성큼 몇 걸음을 내디뎠다. 잠시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기도 했던 오 대장은 마지막으로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 죽을 힘을 다해 엉금엉금 정상에 기어올랐다. 정상은 사람 하나 올라서기조차 힘든 공간이었다. 바로 그곳에 오르기 위해 13년간의 눈물과 사투가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오 대장은 스틱에 달린 태극기를 펴 보이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세계 여성 최초로 14좌 완등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13시간15분에 걸친 ‘사투의 드라마’는 이처럼 황홀한 피날레로 끝났다.
오 대장은 울먹이면서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정상에 선 오 대장은 자신이 한 일을 믿기 어렵다는 듯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눈 덮인 히말라야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회한에 잠겼다.
문준식 기자 mj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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