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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위장전입 ‘단골메뉴’… 사과·변명으로 어물쩍 넘어가

입력 : 2011-09-19 20:26:05 수정 : 2011-09-19 20: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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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모면 급급…결격사유 드러나도 임명 강행 악순환
법률개정안 다수 발의 불구 與野지도부 ‘서랍속으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연말 근로소득 공제를 하면서 수입이 있는 후보자 아버지를 부양가족으로 포함, 경로우대를 받는 이중공제 해왔다. 인정하나?” “꼼꼼히 직접 못 챙겨 송구하다.” “2009년에는 부인을 경로우대 받았다. 그렇게 연배가 높나?” “제 실수로 빚어진 일이고 제 불찰이다. 잘못된 거 있으면 다 시정하겠다.” “강원도로 위장전입하지 않았나?”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4, 15일 이틀간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있었던 문답이다. 한쪽은 후보의 도덕성을 캐묻는 야당의원이고 다른 한쪽은 사과를 연발하는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다.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취득세와 등록세를 탈루한 의혹을 받자 “관행이지만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부동산명의신탁 거래의혹도 받고 있다. 민주당은 김 후보자에 대해 장관 부적격 의견을 모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류우익 통일장관 후보자는 건성으로 답하다 여당 의원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그는 “적지는 않더라도 쓰는 척 하세요”라는 메모를 보며 청문회에 임하다 취재진 카메라에 찍히자 겸연쩍어했다. 이 장면들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간 인사청문회에서 지겹게 봐왔다.

청문회가 끝나면 여야는 경과보고서를 채택한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인사청문보고서는 무려 13번이나 불채택됐다. 임채민 후보자는 야당 퇴장 속에 여당 단독으로 채택했지만 지난 8월 권재진 법무장관 등은 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한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불채택 사례에는 고위공직자로서 자기관리, 자질 부족 등으로 청문회에서 논란이 됐던 후보자들이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장관 등 고위직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현실적 한계를 말해준다. 대통령은 오점이 많은 후보자를 지명하고 고압적인 야당은 개인사에만 치중, 인신공격성 질문으로 상처를 내고 여당은 무조건 옹호하며, 자질과 도덕성에서 결격사유가 드러나도 대통령은 임명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실시된 지 12년째다. 2002년 장상, 장대환 총리 후보자가 위장전입 등으로 잇달아 인준이 부결됐다. 인사청문회는 도덕적 하자가 있는 공직후보자를 사전에 검증해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후 질적으로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에 이른 작금에도 여전히 후보자들은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변변찮은 변명으로 어물쩍 위기모면에만 급급하고 있다. 세상은 크게 변했지만 인사청문회법은 갓 쓰고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여야 의원들은 인사청문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법률안을 다수 발의했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은 올 1월 인사청문회에 대한 자료 제출의무를 강화하는 관련법안 개정안을 제출했다. 공직 후보자의 청렴성 검증을 위해서는 금융정보의 열람이 필요하지만 인사청문회법에는 금융정보 자료제출을 제한하고 있다. 주 의원은 국정조사법에서 증인들에게 금융자료 제출을 규정하듯, 금융실명거래법 개정으로 인사청문회에서 금융정보 열람이 가능하도록 하자고 발의했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은 인사청문회에 후보자나 직계 존비속에 대한 자료제출 규정이 없다. 철저한 검증을 위해 이 법도 개정하자는 것이다. 주 의원은 “국회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정착돼야 대통령의 인사실패를 막을 수 있다”며 “부실한 자료제출을 차단하고 허위진술을 막을 수 있는 제재방안이 신속히 마련돼야 인사청문회가 명실상부해질 것”이라고 했다. 

국회 인사청문기간은 20일간이다. 미국은 지난 회기에서 인준동의안이 상원을 통과하는 데 평균 73일이 걸렸다. 우리는 심사기간이 짧다 보니 부실해지고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정쟁으로 흐르게 된다.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이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별도의 검증기간을 10일 이내로 따로 정하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임명동의안을 제출할 때 대통령실의 검증결과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후보자의 허위진술을 제재하는 규정도 보완입법해야 한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공직후보자가 거짓말을 하면 국회가 고발할 수 있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외 허술한 인사청문회 제도를 체계화하는 개정안이 다수 국회에 제출돼 있다. 그러나 모두 여야 지도부의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내년 5월 18대 국회가 끝나면 모두 폐기될 운명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현안보고서에서 여러 의원들이 발의한 개선방안을 도입, 인사청문회법을 합리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 원내대표단은 못 들은 체하고 있다. 때만 되면 “죄송합니다”가 울려퍼져 나오는 ‘청문회 연속극’을 보면서도 무심한 표정들이다. 정파적 이기주의와 무책임, 무성의 때문이다. 결국 이들 때문에 한국의 대통령들은 인사정책에서 거듭 실패하고 있다. 인사청문회도 이들 탓에 고장난 축음기 신세가 됐다.

백영철 정치전문기자 iron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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