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론 비밀 투표마저 무산…‘ISD폐지·유보’ 조건 강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저지에 올인한 민주당은 16일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폐기’ 당론을 끌어안고 꿈쩍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날 ‘ISD 재협상’ 카드를 내놓고 미국 정부가 이날 ‘재협의 OK’ 신호까지 보냈지만 허사였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한 민주당의 FTA 긴급 의원총회는 강경파와 협상파의 격돌로 오후 4시쯤 끝났다. 총 74명이 참석해 도시락을 시켜 먹으며 6시간 가까운 공방을 벌였다. 손학규 대표를 포함해 30명이 발언대에 섰다. 마라톤 토론 끝에 나온 결론은 ‘선 ISD 재협상·후 비준’이라는 당론 고수였다.
‘한·미 FTA 발효 즉시 ISD 협의를 시작한다고 한·미 정부가 약속하면 비준안을 막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던 협상파가 당론 변경을 비밀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비밀투표는 비겁한 것”이라고 가로막았다. 이 대통령 국회방문 이후 여야 타협의 불씨가 실날같이 보였으나 이마저 사실상 꺼진 것이다.
의총에서 강경파가 먼저 포문을 열며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한미 FTA 재협상과 ISD 폐기 당론을 지켜야 한다”고 못박았다. 정 최고위원은 한미 FTA를 ‘독이 든 만두’에 비유하며 “대통령이 국회에 온 것은 야당 반대를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돌파당하면 민주당이 죽는다”고 핏대를 세웠다.
조건부 한·미 FTA 찬성론자인 송민순 의원조차 “이 대통령의 제의는 하늘에 날아가는 구름 같은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ISD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을 개정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협상파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강봉균 의원은 “미국 의회가 비준안을 처리한 상황에서 기존 비준안 폐기를 요구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최종원 의원은 “ISD는 누가 만들었나.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잘못은 인정하지 않나”라고 쓴소리를 했다. 김성곤 의원은 당론 결정을 위한 무기명 비밀투표를 제안했다.
ISD 긴급 의총 민주당 손학규 대표(앞줄 왼쪽 세번째)와 김진표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가 16일 이명박 대통령의 ‘선비준, 후재협상’ 제안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된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허정호 기자 |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야권 통합의 당리당략을 쫓아 국회를 파행시키는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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