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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우리 안의 폭력] “X나 X같아” “XXX들”… 우리 아이, 욕을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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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9-16 15:56:52 수정 : 2012-09-16 15: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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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대화할 때도 내뱉어”
초·중·고생 97% 이상 “사용”
‘내 짝이라는 놈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옆에서 ××을 떨어대고 새로 전학 온 새끼는 ×나 나대며 애들을 괴롭히기나 하는 ×같은 ×놈, 기분 더러움….’(초등학생의 작문 중)

‘×××. 좀 관리 좀 잘해줘 ×××들. 아 ×같아. 학생으로 살기 ×나 ×같아, ××. 아 공부하면 뭐 해 ××’(고등학생의 대화 중).

우리나라 청소년의 언어의식과 사용실태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듣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욕설과 비속어가 되풀이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24일 국립국어원이 한양대학교에 의뢰한 ‘청소년 언어실태 언어의식 전국조사’(2011년 12월) 자료에 따르면 비속어나 욕설 등 부정적인 언어 사용이 이미 청소년 사이에서는 일상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거친 말투도 문제지만 언어가 폭력이라는 점을 알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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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97%, 중고생 99% 비속어 사용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홍모(47·여)씨는 최근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하고는 망연자실했다. 아들은 홍씨가 옆에 있는데도 집에 놀러온 친구와 ‘병신’ ‘씨발’ ‘존나’ 등 듣기에도 민망한 욕설을 거리낌없이 쏟아냈다. 홍씨는 ‘왜 그렇게 심한 욕을 하느냐’며 아이들을 야단쳤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아들이 전한 말은 홍씨를 더 큰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어제 엄마가 한 말 때문에 친구들이 더 이상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겠대요. 엄마가 책임져요.” 아들은 엄마를 원망했다.

홍씨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욕이 안 들어가면 대화 자체가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번 일로 우리 애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은 홍씨만의 일이 아니다. 국립국어원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생(4∼6학년)은 응답자 1695명 중 97%(1641명), 중고생(중1∼고2) 4358명 중 99%(4309명)가 ‘찌질이, 쩔다, 뒷담까다, 깝치다, 야리다, 존나, 빡치다’ 등의 비속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거의 모든 청소년이 욕설이나 비속어를 내뱉은 적이 있는 셈이다. 욕설이나 협박, 저주, 비하 등 공격적 언어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도 초등생 60.7%(1029명), 중고생 80.3%(3498명)로 나타났다.

욕설 등의 공격적 언어 표현을 ‘거의 매번 사용한다’고 응답한 초등생은 7.9%(134명), 중고생은 18.7%(815명)로 조사됐다. 초등생은 욕설 등 비속어를 ‘한 달에 1∼2번 사용한다’는 대답이 23.6%(397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고생은 ‘하루에 1∼2번 사용한다’는 대답이 21.9%(968명)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욕설=폭력’이라는 인식 없어

고교 2학년 이모(17)양은 “친구 대부분이 ‘존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말했다. 화목한 가정에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평범한 여고생인 이양은 “친구들 사이에서 욕을 하는 것은 습관이 돼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욕이 나쁘다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양은 “욕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비속어와 욕설이 ‘언어폭력’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고생의 경우 ‘폭력적 언어를 사용해도 상대방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항목에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는 답변이 28%, ‘나를 비난하거나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폭력적 언어(욕)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항목에는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37%에 달했다. ‘눈에 거슬리는 사람에게는 폭력적 언어를 써도 된다’, ‘장난 삼아 폭력적 언어를 써도 된다’는 항목에도 24%가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욕설 등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동기에 대해 ▲상대방이 내 기분을 나쁘게 할 때(68%) ▲다른 일 때문에 화난 기분을 풀고 싶을 때(7.9%) ▲내가 상대방보다 세다는 것을 보이고 싶을 때(1.3%) ▲장난·습관적으로(22.4%)라고 응답했다.

청소년의 언어폭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비속어의 강도를 세 가지로 분류해 교사 184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 교사의 99%가 가장 거친 비속어를 학생 간 대화에서 들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초교 교사의 47%, 중학교 교사의 77%, 고교 교사의 경우에는 86%가 학생이 교사에게 내뱉는 욕설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 A초교 김모(46) 교사는 “23년 동안 교편 생활을 하면서 요즘처럼 언어폭력이 극심한 적이 없었다”며 “아이들 사이의 대화는 물론이고 교사와 대화할 때도 자연스럽게 욕설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은 욕설과 비속어 사용이 일상화돼 있을 정도로 언어폭력에 대해 무감각한 상황”이라며 “ 문학이나 시를 교육할 때 문학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 청소년이 자주 사용하는 욕이나 비속어의 어원과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욕이나 비속어의 상당수가 ‘성(性)’적인 것에서 유래했다는 사실만 알아도 사용이 많이 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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