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엔 남북 장관급 회담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청와대를 예방하곤 했었다. 2000년 7월 남북 장관급 회담 때는 전금진 북측 단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2005년 6월엔 권호웅 북측 단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각각 예방했다. 북측이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 북측 대표단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메시지를 들고 내려올 수 있다. 이는 장관급 회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지난 6일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의하면서 1972년 박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7·4남북공동성명 공동기념 방안을 꺼내 들었다. 박 대통령을 향해 러브콜을 보낸 셈이다.
통일부 브리핑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가운데)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이날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 실무접촉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회담에서 개성공단 정상화 같은 공식 의제 외에 북한의 비핵화나 탈북자 문제 등이 거론될지도 관심사다.
남북한은 9일 판문점 실무접촉을 통해 장관급 회담에서 다룰 의제를 협의했다. 북한은 6일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의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상봉, 6·15공동선언 및 7·4공동성명 기념행사 공동개최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정부도 의제와 관련해선 북측의 입장을 수용한다는 유연한 기조다. 이날 판문점 남북 실무접촉 과정에서도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이산가족상봉 문제만을 의제로 제안했다. 그렇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핵심 문제라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정부 내에서는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어떤 형태로든 북핵 문제를 거론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견해가 신중하게 제기되고 있다. 장관급 회담 기조연설이나 협상 과정에서 적절한 수위의 북한 비핵화 촉구 발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핵 6자회담 복원을 위해서라도 북측에 비핵화 입장 표명을 요구해야 한다는 견해도 정부 내에 존재한다. 지난 주말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북한 비핵화에 관해 한목소리를 낸 동력을 살려나가기 위해서라도 이를 남북 회담 과정에서 환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정부 내에는 북핵 언급으로 모처럼 조성된 남북 대화 분위기가 깨지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어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보수 진영 내에선 최근 북한으로 송환된 라오스 탈북청소년 문제와 북한의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책임 문제도 거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남북한은 2011년 2월 군사실무회담에서 천안함, 연평도 도발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했으나 우리 측의 사과 요구를 북한이 거부하면서 결렬됐다. 그런 만큼 정부는 이들 문제를 장관급 회담에 올리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군사실무회담 차원에서 다루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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