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에게는 자주성의 아이콘이었다. 민족의 시조라는 위치는 통합의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단군상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야만적인 행위가 뉴스로 전해질 때야 관심을 받는 오늘날의 단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개천절을 이틀 앞둔 1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민족공동체연구소가 ‘한국사 속의 단군 민족주의’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어 우리 역사에서 단군의 위상과 역할 변화 등을 탐구했다.
◆역사 속의 단군, 자주와 통합의 아이콘
조선시대 단군의 시기에 따른 위상 변화는 단군이 한민족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증명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영훈 교수는 조선이 유교적 합리성을 강조하며 건국됐으나 “민족사의 출발이 하늘의 의지와 천명을 계승한 단군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인식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분석했다.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제후국’ 조선이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낼 수 없다는 사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맞서 “조선은 단군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주적으로 건국한 나라”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사대모화 사상이 조선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단군은 폄하되고, 기자를 숭상하는 경향이 자리 잡았다.
자주성 역사와 문화, 독자적 민족 의식의 매개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개화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다. 정 교수는 “민족적 고유성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의식은 여러 가지의 상징의례를 정착시켰다”며 “‘단기’가 1905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일제기 해외 각지에서 기원절·개천절이라는 이름 하에 축하행사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징성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 일제시대 국내외에서 발표된 독립선언서였다. 경희대 임형진 교수에 따르면 1917년 최초의 선언서인 ‘대동단결선언’, 1918년 ‘대한독립선언서’, 1919년 ‘2·8 독립선언서’에서 단기가 사용되고, ‘5000년 역사’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3·1 운동 당시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다. 임 교수는 “(선언서에 나오는) ‘반만년의 역사’는 단군시대 이래 민족사에 대한 상징적 표현, 우리 민족이 단군 이래 자주 독립국가의 주역이었음을 선언했다”고 밝혔다.
민족 고유성, 정체성의 상징이 됨으로써 단군은 민족 통합의 고리가 된다. 외침에 직면했을 때, 반대로 진취적인 기상이 높을 때 단군은 매번 통합의 구심점이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북방 영토 확장이 이뤄지던 세종대에 단군에 대한 국가 제사가 확립됐고,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고 ‘규원사화’가 저술돼 단군 이래 고유문화의 주체성 회복을 역설했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의식이 대중화되면서 동조동근(同祖同根) 의식, 혈연공동체 의식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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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민족과 건국의 시조로서 오랜 세월 숭배의 대상이 됐다. 외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적 자긍심이 고취되었을 때 단군은 자주성과 통합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오늘날 단군의 위상은 초라하다. 여전히 ‘단군 할아버지’라고는 하지만 실속은 없는 게 현실이다. 적극적으로 배척했던 집단도 있었다. 임 교수는 “단군 민족주의에 극력하게 저항하고 반대했던” 집단으로 ‘유교 성리학자’, ‘공산주의’, ‘식민사학’, ‘기독교’를 들었다. 성리학의 입장에서 “단군은 그저 증명할 수 없는 허구일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해방 후 역사학계를 지배한 식민사학은 “실증적 근거에만 토대한 역사서술을 강조함으로써 단군은 근거가 희박한 신화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민족 자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에서 단군은 “존재 자체가 거부되었고”, 기독교는 단군을 우상으로 치부했다.
공주대 권성아 교수는 정권 차원의 단군 악용 사례를 지적하기도 했다. 권 교수는 “(단군신화 속 홍익인간 이념에 내포된) ‘한국적 민주주의’는 3공화국에서 ‘국적있는 교육’의 이념으로 대체되어 ‘유신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됐고, 5공화국에서는 인본성, 민족정체성 등이 ‘국민정신교육’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군의 의미는 여전하다. 권 교수는 홍익인간이념에 바탕을 둔 교육이 사람 간, 사회 간, 국가 간의 조화를 요구한다고 분석하면서 우리 사회의 다문화 현상에 따른 각종 불평등의 시정과 사회통합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경희대 임 교수는 “단군 민족주의가 숱한 비판과 도전에 직면해서도 역할을 담보해 내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민족통일이라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반세기 이상 대립했던 남북한이 동질성을 획보하고 민족 통합을 이루는 귀중한 자산이라는 점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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