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 박근혜 ·아베 손 잡아야 역사는 우연한 사건의 연속이다. 사소한 토씨 하나 하찮은 몸짓이 세계사 흐름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군가가 그런 역할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다. 그가 임기 끝자락인 지난해 8월10일 갑자기 독도에 상륙했을 때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일 관계 악화를 감수하더라도 임기내 독도 영유권을 확실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말의 뒷부분은 사족이다. 독도가 우리 땅인데 확실히 하고 말고가 어디 있는가. 그는 독도를 방문한 한국의 1호 대통령이 되고 지지율을 5%정도 끌어 올렸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냉정한 계산이 필요하다.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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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 논설위원 |
총리 아베는 취임 후 일본의 우익 정서에 편승, 보란 듯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집단자위권 개헌을 말했다. 독도 침탈의지를 노골화했으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그릇된 역사인식을 보였다. 우경화되고 있는 국내정치적 기류에 불을 붙인 사람이 바로 아베다. 과거사와 독도는 우리에겐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 자존심이다. 건드리면 폭발하게 돼 있다. 지난주 인도네시아 발리와 브루나이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냉대를 받았다. 중국에도 정상회담 제의를 했지만 무시당하고 있다. 자업자득이고 인과응보다. 누굴 탓하겠는가.
일본의 당면 과제는 대중국 견제다. 미국의 방위비를 적극적으로 분담하고 유엔헌장에 따르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미국에게서 승인받는 것도 그런 동북아전략의 일환이다. 미국은 동맹국인 일본을 지지한다. 중국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양국은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미국은 일본에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순위에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인한 일본의 일탈이 한국과 관계를 악화시켜 미국의 국익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내부적으로 경고한 것으로 전해져있다.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일본이 미국으로부터도 불신당하면 입지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 리더십 확보는커녕 아시아패권을 두고 다투는 중국과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베 총리가 나서야 한다. 심각하게 나빠진, 사실상 외교적 단절상태로 가고 있는 한·일 관계를 여기서 멈추게 하려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하고 독도, 과거사에 대한 도발을 중지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일본이 미래지향적 태도를 보이면 한국도 그의 손을 냉정하게 뿌리치지 않을 것이다.
동북아 안보 질서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 맞추기에 부심하고 있다. 북핵을 안고 있는 핸디캡 때문이다. 한반도 안보를 제대로 지켜내려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동시에 중국과 이어져 있어야 한다. 구한말 한반도 각축전이 전개될 때 알려진 전략적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 한국의 상황은 친미(親美) 연중(連中)이다. 동맹국인 미국과는 형제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야 하고,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과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축이 무너져 있어서는 효과적인 전략이 구사될 수 없다. 일본과의 정상적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북한에 대한 압력은 약해졌다. 현재 흐름으로는 한·미·일 삼각동맹이 되는 결일(結日)은 어렵겠지만, 반일(反日) 기치만 들어서는 외교안보 공백이 너무 커진다. 중국과 일본은 센가쿠 열도라는 뜨거운 영토문제가 가로 막혀 있다. 우리는 그처럼 심각한 영토문제가 걸려있지는 않다. 한·일 두 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더구나 대일관계에서 한·중 두나라가 공조한다는 인상을 대외에 심어주는 것은 이롭지 않다.
아베 총리가 정서상 싫더라도 박 대통령이 감정을 빼고 그의 손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국내 정치를 뛰어넘어 멀리 내다보는 통찰력이 한 세기 전 구한말 때보다 더 많이 필요한 시기다.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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