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방송된 종편 프로그램 ‘히든싱어 2’에서는 조성모가 자신의 대표곡 ‘투 헤븐(To Heaven)’을 가지고 모창 능력자들과 목소리 대결을 펼친 결과 초반인 2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그야말로 ‘원조’를 능가하는 ‘짝퉁’들의 반란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조성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중 심리는 언제나 변덕스럽다. 어제는 귓가에
“사랑해”를 속삭이다가도,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식어버릴 수도 있는 게 사람 마음이다. 이런 변덕스러운 대중 심리의 최대 피해자는 아마도 가수들일 것이다. 대중은 미성을 가진 사람이 계속 같은 창법으로 노래하면 “나이를 먹어서도 계속 미성으로 노래하니 듣기 거북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이럴 때 가수들은 매우 혼란을 느끼게 되고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과거의 내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끊임없이 새로운 창법에 대해 고민해야 되는 것인지. 대중의 선호도를 무시한 채 본인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도 연예인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어찌 됐든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을 등에 업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성모는 1998년 배우 이병헌과 김하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투 헤븐’ 뮤직비디오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당시 영화 한 편을 방불케 하는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는 큰 인기를 끌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뮤직비디오에 대한 관심은 노래를 부른 주인공에게 쏠렸다.
‘얼굴 없는 가수’란 타이틀이 조성모란 이름 석 자 앞에 붙었다. 대중은 그의 감미롭고 순수한 목소리, 시원한 가창력에 매료됐다. 조성모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커져만 갔고, ‘노래는 잘하는데 얼굴이 못생겼을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이 최고조에 달했다. 일부 팬들은 그에게 “차라리 얼굴을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그러다 얼마 후, 조성모가 방송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막연한 '예상'과는 달리 또렷한 이목구비, 하얀 피부, 그리고 촉촉한 눈망울을 지닌 ‘훈남 청년’이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였다.
얼굴을 드러낸 이후에도 ‘불멸의 사랑’(1998) ‘슬픈 영혼식’(1999) ‘가시나무’ ‘아시나요’(2000) ‘슬픈 운명’(2002) 등 드라마 형식 뮤직비디오는 계속 제작됐다. 이영애 소지섭 권상우 신민아 김석훈 신현준 김승우 허준호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그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조성모표 뮤직비디오’를 따라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기존 뮤직비디오보다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야 했지만, 그 이상의 홍보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이나 질이 음악을 감상하는 데 노래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98년 데뷔 앨범에 실린 ‘후회’를 통해 조성모는 ‘댄스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뽐냈다. 댄스음악들이 가요계를 점령하다시피 하던 때라 빠른 템포의 음악도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 1990년대 흔히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댄스뮤직으로 1집 마지막 활동을 장식했다. 2집 ‘슬픈 영혼식’의 뮤직비디오에는 조성모 본인이 직접 출연해 엔터테이너적 기질을 마음껏 발산했다.
‘조성모표’ 미소년 감성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금세 녹여냈다. 그 대표적인 곡이 바로 ‘가시나무’다. 누구나 한번쯤 겨울 창가의 습기처럼 촉촉한 발성을 흉내내 봤을 것이다. 시인과 촌장의 동명곡을 리메이크한 이 노래는 조성모 특유의 호흡이 묻어나는 진가성 느낌의 발성이 절정에 다다른 곡이 아닌가싶다. 이영애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뮤직비디오는 일본영화 ‘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슈운지)를 연상시키듯, 눈 오는 겨울을 배경으로 제작돼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혔다.‘가시나무’와 같은 해 선보인 ‘아시나요’ 역시 전 국민의 감성을 ‘무장해제’ 시켜놓은 곡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현악기의 깊은 울림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뮤직비디오와 어우러져 처연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이후에도 조성모는 발라드와 댄스곡을 번갈아 발표·활동했다. 데뷔 초반의 순수한 이미지를 벗고 파워풀한 음색과 가창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는 계속됐다. 하지만 대중은 ‘조성모의 변신’에도 불구하고 곧 흥미를 잃어갔다. 오히려 그의 변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조성모식 발성도, 음악스타일도 모두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대중이 원하고 기다리는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과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고픈 갈증이 계속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조성모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다시 둘러보면 뜻밖의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만 36세 나이의 가수에게서 이토록 많은 히트곡을 발견할 수 있는 케이스는 흔하지 않다. 연예인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고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끊임없는 자기관리의 결과다.
조성모는 최근 사석에서 필자와 만나 음악적 고민을 털어놨다. 최근까지도 음반 준비를 하면서 끊이지 않는 고민은 ‘대중이 기대하는 음악과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
그동안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었지만, 선배로서 ‘무책임’한 말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접었다. 자신의 색깔을 흠뻑 담은 ‘조성모표 발라드’를 원하는 대중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대중이 생각하지 못했던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한다는 것은 두려운 도전일 수 있다. 반면, 과거의 음악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중의 눈치만 보는 것도 음악인으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라는 것도 그는 잘 안다.
그런 그에게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지난 십여 년간 그가 해온 음악적 결과물을 들여다보면 정답이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대중은 여전히 그에게 냉정하면서도 변덕스러운 잣대를 들이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겁쟁이’가 될 필요는 없다. 우리들의 감성이 오롯이 담긴 조성모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함부로 휘젓지 말아달라는 팬들의 투정이 ‘히든싱어’ 논란에서 드러난 것 같다.
음악은 전체를 보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처럼 구석구석을 살피며 들을 필요는 없다. 수많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이 양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음정·박자·발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가슴으로 들어야 하는 노래를 머리로 듣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노래를 잘하는 조성모라 해도 자신의 노래를 마치 녹음을 틀어놓은 것처럼 매번 정확히 잘 부를 수는 없다. ‘어제는 칭찬, 오늘은 비난’으로 쉽게 돌변하는 ‘변덕쟁이’ 대중의 입맛을 다 맞출 수도 없다. 그런 외적 조건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고 가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음악의 본질에 집중하는 조성모가 되길 바란다.
가수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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