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인식-폐쇄적 공간탓에 성범죄의 온상으로

새로운 놀이문화의 메카로 각광받고 있는 클럽이 일부 클러버(clubber·클럽 마니아)의 그릇된 성문화 때문에 일탈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특히 VIP룸은 공간적 폐쇄성과 심리적 우월감으로 범죄의 온상이 되기 쉽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 강남 유명 클럽에서 만난 직장인 한모(26·여)씨는 "클럽에서 어느 정도의 신체접촉은 자연스럽지만 VIP룸 같은 경우는 밀폐돼 있기 때문에 스킨십이 과해지는 것 같다"며 "상대방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 룸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고 혀를 찼다.
보통 클럽의 VIP룸은 클러버들이 춤을 추며 노는 스테이지와 분리돼 있다. 2층 혹은 3층에 따로 위치시켜 거리를 두는데다 일반 클러버들과는 다른 색의 밴드를 팔목에 착용, 접근자체를 차단한다. 클럽 직원들조차 VIP의 요청이 없는 한 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클럽 VIP룸을 애용한다는 대학생 신모(24)씨는 "아래층에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우월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VIP에 승차하기…조각과 도시락
강남 클럽 VIP룸의 기본 가격은 150만원.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각모임'이 생겼다. 조각모임은 클럽 관련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만난 7~10명의 사람들이 돈을 나누어 내는 것을 뜻한다. 최근 1~2년 사이 클럽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VIP룸에 들어가려는 조각모임 모집 글이 쏟아지고 있다.
조각모임의 주요 멤버는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대략 20만원 가량을 나눠 내야 하기 때문에 금전적 여유가 있는 직장인이 많다. 사무직부터 서비스·판매업, 전문직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클럽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D(32·가명)씨는 VIP룸을 '권력'에 비유했다. 그는 "이 권력이 클럽에 온 여성과 하룻밤을 보낼 확률을 높인다. 그래서 조각모임이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조각모임이 이 권력을 획득하는 하나의 편법이라는 것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VIP가 되기 위해 조각에는 '도시락'이 뒤 따른다. 도시락은 클럽 안으로 몰래 주류를 반입하는 것을 뜻하는 은어다. 남대문 시장에서 한 병에 2만원이면 살 수 있는 양주가 클럽에서는 25만~30만원이다. 대부분의 조각모임 멤버들은 남대문에서 양주를 구입한 뒤 클럽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온다.
익명을 요구한 클럽 관계자는 "조각과 도시락의 공통점은 결국 여자"라며 "클럽에 온 여성과 쉽게 놀기 위해서는 룸과 술이 필요하다"고 조각과 도시락의 관계를 설명했다.
클럽 내의 이런 분위기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선을 넘어 성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암묵적 동의'를 내세우며 성관계까지 당연시 여긴다.
지난 6월에는 서울 강남에서 한 남성이 클럽에서 만난 여성을 친구 2명과 함께 집단 성폭행해 경찰에 붙잡혔다. 올해 초에는 클럽에서 만난 여성에게 잠자리를 요구한 10대가 거절당하자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해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강남의 H클럽 영업실장 김모(27)씨는 "클럽을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서 과도한 스킨십은 클럽의 이미지를 망치는 주범"이라며 "특히 VIP들 중에는 오늘 밤은 반드시 즉석만남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고를 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또 다른 E클럽 영업실장인 조모(30)씨는 "조각모임으로 오는 사람들이 클럽을 퇴폐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며 "도시락까지 준비해 오는 조각 모임 고객들은 클럽 입장에서 이래저래 골치 아픈 존재다"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각'의 마지막 단계, 막장 인증과 후기
현장 범죄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의 2차 피해도 발생한다. 인증과 후기가 그것이다. 언제 어느 클럽에서 누구와 놀았는지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것이다. 인증을 위해 클럽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해당 여성의 사진을 올린다. 심한 경우 여성과의 잠자리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클럽을 찾는다는 직장인 권모(29)씨는 "스마트폰 메신저를 통해 여성과 나눈 대화 내용, 벗어 놓은 속옷을 찍는 건 애교 수준"이라며 "관계시 목소리까지 녹음해 올리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클럽 관련 커뮤니티 세 곳을 확인해 본 결과 각 카페 공지사항에는 '음란한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것을 금하고 올라올 시 바로 삭제 하겠다'는 글이 있었다. 최근 인증에 대한 단속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더 검색을 하자 노골적인 성묘사가 담긴 후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노골적인 클럽 후기를 올리는 카페 회원들은 대부분 조각모임을 했다는 말과 함께 VIP룸 안의 사진을 함께 올려놓았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아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경찰 관계자는 "성범죄 같은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명확해 문제가 없지만 인터넷 후기나 인증은 제3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지 않는 이상 강한 처벌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릇된 과시욕, 범죄로 발전하기도
전문가들은 조각모임과 도시락, VIP룸에서의 문란한 술자리, 2차로 이어지는 후기·인증 등 일련의 과정을 '과시욕'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해석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그릇된 과시욕과 지배욕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VIP로 얻어지는 후광효과가 여자와 만나는 것을 쉽게 해주다보니 성적으로 문란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클럽에 대한 인증이나 후기 또한 '나 이렇게 잘 노는 사람이야'라고 과시하고자 하는 심리 때문에 이같이 잘못된 행동들이 자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소 억제됐던 욕구가 술과 음악과 여자가 있는 클럽에서 분출되면서 성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신체적 접촉이 더 심한 VIP룸의 경우는 발생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 또한 "여성에 대한 지배 욕구와 과시욕"이 원인이라고 동의한 뒤 "인증이나 후기는 그릇된 인터넷 문화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인증과 후기를 일종의 놀이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인증이나 후기도 일종의 성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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