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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찢기고 변색에 오염까지… 인력없어 방치 일쑤

입력 : 2014-05-15 06:00:00 수정 : 2014-05-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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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조사서 드러난 문화재 훼손 실태 ‘찢기고 오염되고 변색된데다, 벌레의 공격까지.’

국가지정의 일부 문화재가 처한 현실이다. 국보, 보물 등으로 이름붙이며 최고의 가치를 공인해 놓고도 제대로 된 관리와 보존을 하지 않아 생긴 결과다. 훼손이 되어도 적시에, 제대로 된 보살핌을 기대하기 힘든 사정도 있다. 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에 우선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만을 탓할 수 없는 예산, 인력, 시스템 등의 복합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문화재청의 정기조사, 특별점검 결과 중 일부 공개된 내용에 드러난 문화재 관리 현황 및 체계의 문제점이다. 

곧 쓰러질 듯 … 사적 507호 순천 선암사 대선루 협문
◆어떤 훼손 발견됐나

문화재청의 조사, 점검에서 훼손이 발견된 동산문화재 중에는 종이 재질이 유독 많다. 종이가 환경 변화, 외부 충격 등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돼 ‘보존처리 검토 대상 목록’에 오른 24건 중 20건이 종이 재질이다. 훼손 양상은 다양하다. 변색, 얼룩, 찢김, 습기에다 충해나 곰팡이, 안료 탈락 등이 보고됐다.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국보 268호)은 “갈변(색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과 얼룩 심각”, ‘주역천견록’(보물 550호)은 “전체적인 갈변 및 오염, 접힘, 찢김 등 손상 심각”, ‘금강경삼가해 권1, 5’(〃 772-1호)는 “충해로 인한 천공 및 분비물 오염” 등이 지적됐다. 한 보존처리전문가는 “지류 유물에 흔히 나타나는 훼손 양상이고, 해당 문화재를 직접 봐야 그 정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면서도 “충해는 제대로 된 수장고를 갖추고, 훈증만 적절히 하면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소장처의 시설 문제 때문에 문화재의 안전한 보관을 우려한 경우도 있었다. 전남 무위사는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 1315호)의 소장처인데 전시관에 ‘누수 및 진열장 내 습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벽화가 곰팡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사적 중 ‘고령 고아리 벽화고분’(165호)는 “벽체의 균열과 파손이 있으며 벽화는 박락, 변색오염, 균열 등이 나타났다. (고분의) 천장에는 결로가 발생하고” 있었다. ‘순천 선암사(507호)의 대선루 협문’은 “전반적인 훼손이 진행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문화재청은 두 문화재 모두 시급하게 보수가 필요하다고 보고 고아리 고분벽화는 7월까지 보존 방안을 마련하고, 대선루에 대해서는 올해 긴급 보수를 시행할 계획이다. 건조물 문화재의 경우, 지난해 실시한 정기조사 대상 중 13건은 ‘당장 멸실될 가능성은 없으나 안정적인 보존관리를 위해 보수가 시급’한 ‘D등급’의 판정을 받았다.

◆훼손, 부실관리의 원인은

문화재청은 파악된 문화재의 훼손 원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관련 전문가들과의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화재청, 지자체의 역량 부족과 열악한 여건, 관계자들의 인식 부족, 보존처리 인력 및 장비의 부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문화재 보존, 관리의 책임을 지고 문화재청, 지자체가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정부가 문화재 주기적으로 체크할 만한 여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대부분의 문화재를 관리하는 주체인 지자체의 한계도 분명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문화재전담조직을 갖추고 있는 지자체(광역단체 17곳, 기초단체 229곳)는 15곳에 불과하다. 소속된 인원은 고작 283명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훼손이 발생해도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보존처리를 위한 예산 신청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임시 지지대로 간신히 지탱… 사적 165호 고령 고아리 벽화고분 문화재청의 점검 결과 사적인‘순천 선암사 대선루 협문’은 “전체적인 훼손이 진행되어 있는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고, ‘고령 고아리 벽화고분’은 벽체가 균열되고 벽화는 박락, 오염 등의 훼손을 보이고 있었다.
문화재청 제공
박물관, 전시관의 열악한 여건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이번 조사에서 두드러진 문제를 보인 곳이 사찰이다.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다량소장처에 대한 조사에서 훼손이 지적된 문화재의 소장처 7곳이 모두 사찰이다. ‘진주 청곡사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보물 1232호)의 손상된 부위를 테이프를 이용해 붙여 놓은 청곡사는 언제,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청곡사 관계자는 “지금 주지 스님이 취임하면서 인수인계 받은 자료에 손가락 손상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손가락 손상이) 부러진 건지, 금이 간 건지 (테이프를) 풀어볼 수 없어 알 수가 없다. 전임자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찰 소장 문화재의 훼손은 그 정도가 심한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불교중앙박물관 관계자는 “항온·항습기를 돌리는 데 한달에 전기세가 몇 백만원씩 나오는 등 비용이 많이 들어 각 사찰이 전시관을 운영하는 데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보존처리 인력과 장비 부족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훼손된 문화재를 보존처리하려 해도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안중근의사유묵-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569-10호)의 경우가 그렇다. 이 문화재의 소유단체인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이번에 지적된 ‘족자 장황 약화, 찢어짐, 부분 변색’ 등에 대해 2010년 보존처리를 시도했으나 책임지고 맡아 줄 기관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민속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등이 인력, 시설 등을 어느 정도 갖춘 기관으로 꼽히지만, 자체 보존처리 업무를 소화하기에도 벅차 타기관 등의 의뢰를 받기에는 무리인 게 현실이다. 한 전문가는 “특히 사립박물관은 보존처리 인력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잘 보관이라도 하면 다행인 경우도 있다”며 “인력, 시설을 갖추는 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기 때문에 의지가 있다고 해도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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