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1일부터 쌀 시장을 개방키로 했다. 쌀 시장 개방을 또 미루면 의무수입물량이 대폭 늘기 때문이다. 300∼500%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되 수입물량이 과도하면 특별긴급관세(SSG·Special Safeguard)를 부과해 국내 쌀 농업의 피해를 줄이기로 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상대로 한 정부의 쌀 관세율 협상은 순탄치 않다. 도도한 개방의 물결 속에 높은 관세율을 항구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쌀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정부가 두 차례 쌀 관세화(시장 개방) 유예조치를 받은 20년간 쌀 산업을 보호하는 데 치중한 것은 ‘미봉책’,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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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쌀 관세화 결정`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결정으로 한국은 2015년 1월 1일부터 쌀 관세화에 들어간다. 김범준기자 |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고도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쌀의 관세 예외가 인정돼 1995년 초부터 올해 말까지 두 차례 관세화 유예조치를 받았다. 추가로 관세 유예조치를 받으면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에 따라 의무수입해야 하는 물량이 올해 40만9000t에서 최소 82만t으로 두 배 는다. 이럴 경우 재정적 부담과 쌀 과잉 공급 등 상당한 후유증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 장관은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관세율이 대략 300∼500%인데 정부안들도 그 범위 내에 있다”며 “외국산 쌀이 과도하게 들어오면 긴급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쌀 시장 개방을 대비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적정 관세율은 400%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WTO가 매우 높은 관세율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쌀 수출국인 미국도 고관세율에 부정적이어서 협상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이 장관은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때 쌀을 양허(관세철폐·축소)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쌀 양허 대상 제외 방침을 고수하느라 TTP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어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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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시장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청사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쌀을 뿌리며 시위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따른 쌀 농가 지원을 위해 국회와 농업계의 의견을 추가 수렴해 쌀 산업발전대책을 마련한다. 주요 대책은 ▲쌀 수입보험제도 도입 ▲쌀 재해보험 보장수준 현실화 ▲전업농·들녘경영체 육성을 통한 규모의 경제화 ▲국산·수입쌀 혼합 판매금지·부정유통 제재 강화 등이다. 상당 부분이 쌀 산업 경쟁력 제고와는 거리가 멀다. 전문가들은 “우리 쌀이 품질과 가격 등에서 수입쌀보다 우위에 설 장기 마스터플랜 없이는 수입 개방에 맞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찬준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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