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빗장 푼 쌀 시장
18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후 쌀을 제외한 농산물 등에 대해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의 차이만큼 관세를 부과하는 ‘예외없는 관세화’ 의무를 이행했다. 쌀 시장 개방으로 식량안보가 위태로워지고, 농촌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 등이 어우러지면서 ‘쌀 개방 절대불가론’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로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지난 20년간 국내 쌀 경쟁력 향상과 시장 환경 등을 고려해 내년부터 시장을 개방키로 했다. 정부는 우선 국제 쌀값 상승으로 국제 쌀값 대비 국내 쌀값이 2005년 4∼5배에서 2013년에는 2∼3배로 줄어든 것을 개방 이유로 꼽았다. 정부가 300∼500%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면 국내 쌀의 가격 경쟁력이 앞서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국내산 쌀을 선택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현재 국산 쌀 가격은 한 가마니(80㎏)에 17만원 선이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산 중립종 쌀의 국제가격 평균은 6만3303원(80㎏)이었으나 올해 5월부터는 80㎏당 8만∼9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산 단립종 쌀의 평균 가격은 8만5177원(80㎏)이었다. 만약 국제 쌀 가격을 가마니당 8만원으로 가정하고 400%의 관세율을 적용하면 수입 쌀의 국내 도입가는 ‘8만(8만×400%)’로 40만원이 된다.
또 그동안 쌀 생산기반 정비, 기계화, 소득안정장치 강화, 유통구조 개선 등으로 우리의 쌀 산업은 소비, 생산, 유통 전 부문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지난해 쌀 의무수입량(MMA)으로 들여온 수입쌀과 국내산 쌀의 품질을 비교한 결과 국내산 쌀이 1, 2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산과 중국산은 각각 4, 5위 수준이었다.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청사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쌀을 뿌리며 시위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정부가 300∼500% 고율 관세 적용을 전제로 쌀 시장을 개방키로 한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이 같은 고율 관세를 WTO 회원국들과의 협상에서 얻어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FTA처럼 일대일 협상이 아닌 여러 회원국과 논의해야 하다 보니 한국의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또 WTO 협상 과정에서 현재 의무수입하는 물량의 쌀 중 밥쌀용 쌀의 비중을 높이라는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40만9000t 중 밥쌀용 쌀은 12만t이고 나머지는 가공용 쌀이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저가의 밥쌀용 쌀이 늘어나면 국내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WTO 협상에서 고관세율을 유지했다고 해도 FTA나 TPP 가입 협상에서 이 비율이 그대로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TPP와 FTA에서 쌀은 양허 제외 또는 관세율 인하를 하지 않겠다고 방침을 정했다지만 협상 과정에서 변수가 생길 여지가 있다. 특히 쇠고기 시장 추가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 등에서는 쌀 관세화율 등을 이용해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최대 농민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의 김광천 대외협력실장은 “쌀 관세화 관련해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쌀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400∼500%의 관세율을 적용해야 우리 쌀이 타격을 덜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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