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동북아역사재단은 충북대 신영우 교수가 2011년 환수된 일본 궁내청 소재 조선왕조 도서에 포함된 ‘갑오군정실기’(사진) 분석 결과를 21일 연세대 학술정보원에서 열리는 ‘청일전쟁·동학농민혁명과 21세기 동아시아 미래 전망’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다고 밝혔다.
신 교수에 따르면 조선정부는 1894년 9월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양호도순무영’을 한성부에 설치했다. 최고 책임자인 도순무사는 신정희를 포함해 526명이 소속된 조직이었다. 최초의 근대식 경찰인 경무청은 중군으로 참여했고, 통위영·장위영·경리청 등의 소속 병사를 출진시켜 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했다. 출전한 군대는 좌선봉에 통위영의 이규태가 지휘한 402명을, 우선봉에 장위영의 이두황이 지휘한 381명을 배치했다. 여기에 장위영, 경리청, 교도대, 강화도 진무영 등의 장수가 이끈 1718명을 8개의 부대로 나눴다.
신 교수는 “도순무사 신정희와 선봉장 이규태가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일본군 진압군 장교들과 협력하지 않아 설치 95일 만인 12월27일 갑자기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록을 담은 갑오군정실기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에 반출해 간 귀중 도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학술회의에서는 청일전쟁 당시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되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자료가 소개된다. 이노우에 가츠오 홋카이도대학 교수는 과거의 신문, 잡지를 통해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섬멸작전이 청일전쟁 후 의도적으로 은폐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청일전쟁 당시 군부의 독주를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하였음을 실증한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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