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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봄날, 당신의 솔푸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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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1 22:03:51 수정 : 2016-03-11 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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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틀면 ‘먹방’프로 넘쳐나
옛날 가슴 아픈 춘궁기와 대조
시장엔 봄나물 등 제철음식 풍성
봄은 왔지만 현실은 허전·막막
영혼의 온기 데워줄 음식 그리워
‘먹방’ 프로가 넘쳐나고 있다. 저녁 6시 TV를 틀면 온통 먹는 이야기다. ‘6시 내 고향’ ‘생생정보통’에서 싱싱한 식재료와 음식을 만드는 과정, 맛집 소개가 이어진다. ‘VJ특공대’ ‘1박2일’ ‘나 혼자 산다’에서도 먹는 이야기는 빠질 수 없다. 작년 ‘백주부’의 요리가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수많은 블로거들이 ‘차승원’의 레시피를 자신의 블로그에 퍼나르고 있다. 연인들에게 맛집 앱을 통한 맛집 정보 검색은 기본이다. 연예인을 동반한 맛집기행, ‘테이스티로드’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먹는 것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봄철, 과거 우리 조상들은 춘곤증이 아니라 춘궁기에 시달렸다. 밥을 많이 먹어 졸린 것이 아니라 먹을 양식이 없어 배고파했다. 춘궁기는 묵은 곡식이 다 떨어져 햇곡식이 나올 때까지 식량이 궁핍할 수밖에 없던 봄철을 뜻한다.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집으로 오다 배고파 소나무껍질을 벗겨 먹던 것이 바로 1960, 70년대 일이다. 먹는 일은 생존의 문제이며 생명의 일이며 가족의 일이기도 했다. 이제 ‘먹는 행위’는 취향이 되고 스타일이 되고 쾌감과 도락과 연애의 일종이 되었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시장에 나갔더니 벌써 봄나물이 올라와 있다. 쇼윈도에는 봄 바바리가 진열되고 라디오에서는 로이킴의 ‘봄봄봄’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봄이 왔는데, 봄이 오고야 말았는데, 영 봄이 온 것 같지가 않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꽃샘추위 탓일까. 봄나물을 먹지 않아서일까. 영 마음이 허전하고 휑하다.

인터넷에서 봄철 제철음식을 찾아본다. 도다리 쑥국, 냉이된장국, 방풍나물, 취나물, 봄동나물, 달래나물 등 그중 달래나물에 오이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부쳐 먹어볼까. 살이 통통하게 올라온 도다리를 사서 된장을 푼 다시마멸치육수에 무와 함께 푹 오래 우려내듯 끓인 후 콩가루를 묻힌 쑥을 슬쩍 집어넣어 도다리 쑥국을 끓여볼까. ‘좌광우도’라고 오른 쪽에 눈이 있는 도다리가 수족관 바닥에 누워 눈을 껌뻑껌뻑거리고 있는 것만 봐도 즐거운 봄날 재래시장이다.

그러나 봄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그런 제철 음식이 아니다. 대학에 오면서 처음 부모의 품을 떠나 서울생활을 하게 되었다. 서울의 3월은 대구보다 훨씬 추웠다. 연희동 2층 하숙집에 문풍지로 언제나 바람이 새들어왔다. 나는 늘 감기에 시달렸다. 버스를 타는 것도 낯설고 서울말씨도 지리도 낯설었다. 학교 캠퍼스의 한쪽에서는 미팅으로 하이힐을 신은 여학생들이 몰려다녔다. 한쪽에선 주먹을 쥐고 투쟁가를 부르는 선배들이 있었다. 매일 엄마가 보고 싶어 울적했다. 그때 연희동 하숙집 아주머니가 해준 김치찌개, 신 김치에 돼지고기를 푹푹 썰어서 넣고 끓이다 두부를 듬성등섬 썰어 넣은 뒤 김치국물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소박한 김치찌개. 흰 쌀밥 한 숟갈을 입에 넣은 후 보글거리는 김치와 두부와 국물을 한 숟갈로 푹 떠서 입으로 가져가면 입천장이 데일 듯 뜨겁다. 하지만 곧이어 매콤하면서 알싸한 김치와 고소한 돼지기름이 합쳐져 풍미가 기가 막히게 올라온다. 입 안과 목구멍 가득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렇게 해서 하숙집 아주머니의 김치찌개는 향수병에 시달리던 대학 신입생에게 솔푸드가 되고야 말았다.

맛은 추억과 함께 있을 때 진정한 맛이 아닐까.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처럼. 맛이란 결국 기억이고 추억이다. 그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혹은 내 외로움을 녹여주었던 맛, 그것은 꼭 제철 음식이 아니어도 괜찮다.

TV를 틀면 음식 시식자들은 과장될 만큼 감탄사를 연발한다. 하지만 그 음식이 슬픔과 외로움을 녹여줄 진정한 솔푸드처럼 보이지 않는다. 3월, 부모를 떠나 신학기를 시작한 신입생들의 외로움을 잊게 하는 솔푸드는 없을까. 현실의 막막함을 위로해줄 도시인들의 솔푸드. 쌀쌀하면서 따뜻한 봄날, 영혼의 온기를 데워줄 음식이 그립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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