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지낸 10일, 가장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었다. 2019년 기준 전 세계 인구밀도 10위. 어딜 가나 넘치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각각이 뿜어내는 영롱한 색채를 쳐다보느라 그런 생각은 멀리 떠나버렸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스스럼없이 달려오는 아이들, 생선을 다듬다가도 카메라 셔터에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는 할머니,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외국인들 앞에서 구수한 한 곡조를 뽑는 아저씨. 순박한 그들의 웃음에 어느새 타지에서 느끼는 긴장이 녹아내린다. 마음을 열고 그들의 환대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간 잊고 지냈던 나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콕스바자르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 콕스바자르를 앞마당 삼아 살아온 아이의 눈은 해질녘 콕스바자르의 물처럼 반짝였다. 콕스바자르를 말하면서 그날 해변에서 만난 4명의 소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콕스바자르를 가는 날, 또 다른 아이들이 당신 옆에 찾아와 콕스바자르의 물처럼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여줄 것이다.
콕스바자르의 길이는 120㎞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모래사장으로, 지도를 보면 그 위용을 알 수 있다. 방글라데시 남쪽 벵골만과 연결된 황금빛 모래사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조차도 높지 않아 해수욕을 하기 좋다. 시설이 깔끔한 호텔과 휴양시설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개발된 지역은 일부이며, 대부분은 태고의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콕스바자르는 방글라데시의 대표적인 어항(漁港)이기도 하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밤이면 콕스바자르 야시장에 모여든다. 길거리 먹거리와 비린내 가득한 어시장의 활기가 장관이다. 콕스바자르의 초승달 모양 ‘달배(moon boat·문보트)’는 이 지역의 마스코트다. 마치 해적 영화에서 본 것 같이 생겼는데 실제 고기를 잡는 목재 어선(漁船)이다. 약 8m, 4t급에 4∼5명의 어부를 태우는 아담한 배로, 이제는 사라져 가지만 여전히 해질녘 고기를 가득 싣고 들어오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다.
◆순다르반 크루즈, 반다르반 힐 리조트
필리핀 해안지대 등에서 볼 수 있는 맹그로브 숲이 전 세계에서 가장 넓게 분포하는 지역은 방글라데시 남부 순다르반 지역이다. 열대 또는 아열대의 진흙 해안에서 발달하는 삼림을 맹그로브 숲이라고 부르는데, 나무들의 뿌리가 땅 위에 드러나 있다.
순다르반은 갠지스강·브라마푸트라강·메그나강에 의해 침전물이 퇴적돼 형성된 세계에서 가장 큰 삼각주다. 인도와 벵골만 지역에 걸쳐 있다. 200년 전에는 면적이 1만6700㎢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현재는 줄어들어 원래 면적의 3분의 1 정도다. 순다르반 맹그로브 숲은 방글라데시의 마스코트인 벵골호랑이의 서식지로, 운이 좋으면 새벽녘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무리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발자국을 보는 데 만족해야 한다. 순다르반을 여행하는 일반적 방법은 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유역을 크루즈하는 것이다. 고급 크루즈선은 아니지만, 화장실과 2인용 객실, 식당 등을 갖추고 있어 여행에 부족함은 없다. 새벽녘 선실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에 일어나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순다르반 숲의 일출을 바라보니 태고의 일출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글라데시 남동부 치타공 반다르반 지역에 가면 48개의 소수 민족이 산다. 산을 올라가면서 집 밖에 나와 이방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벵골인의 모습에서 점점 태국이나 미얀마 사람들과 비슷한 생김새로 바뀐다. 이들은 벵골어와 함께 고유의 민족어를 사용하며, 그들 자신의 문화·예술 유산도 보존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들의 민족성을 보호하면서 이들의 문화적 유산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반다르반 산 꼭대기에 위치한 사이루 힐 리조트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은 장관이다. 다만 현재 미얀마 접경 지대인 치타공 힐트랙스는 외교부 여행 경보 3단계가 발령돼 있어 발령이 철회될 때까지 이 지역 개인 여행은 삼가는 것이 좋다.
◆어디에나 사람이 있었다
육로로 유럽과 아시아를 횡단한 이탈리아 여행전문지 ‘트래블글로브’ 페데리코 클라우스너 편집장에게 열흘간 방글라데시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사람’.”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사람 간의 소통이나 사람의 아름다움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방글라데시의 진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치여 그 가치를 잠깐 잊고 있던 사람이면 방글라데시에 가면 그 마음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가 현지인을 만나기 제일 좋은 곳은 역시 시장이다. 방글라데시인이 좋아하는 생선과 과일이 줄줄이 매달려 있는 방글라데시 시장은 특히 시끌벅적하다. 아직 도시화가 더딘 만큼 지역마다 있는 큰 시장이 지역 소식통 역할을 한다. 종일 도로를 달리면서 지역과 지역이 바뀔 때마다 나타나는 다른 시장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교통 요충지에 시장이 들어서다 보니 때로 철길 위에 좌판이 꾸려진 모습도 흥미롭다. 기차가 지나갈 시간에는 재빨리 좌판을 치운다.
방글라데시 시장이나 길을 지나다 보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나핏’으로 불리는 이발사다. 과거에는 한 집안에서 대를 이어 이발사가 배출되곤 했다.
가장 소식이 빠른 곳도 이발소다. ‘소식통’이 가득한 이발소 주변엔 어김없이 선거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는 것을 보니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돌이켜보니 방글라데시에서 열흘 동안 족히 몇백명은 되는 사람을 만났다.
외국인이 드문 만큼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자고 해서 연예인이 된 줄 알았다. 최선을 다해 그들의 환대에 응했다. 방글라데시는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는 곳이었다.
순다르반·콕스바자르·반다르반(방글라데시)글·사진=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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