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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파산사태로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이후 서방 신용평가사들은 이를 초래한 주범으로 몰려 뭇매를 맞았다. 그도 그럴 만했다. 세계 신용평가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은 경쟁사를 제치고 유가증권 평가 업무를 따내기 위해 부도 위험이 높은 증권에까지 ‘투자 가능’ 등급을 부여했다. 이들 3대 신용평가사 최고 경영자들은 미국 하원 청문회에 불려가 ‘엉터리 신용 평가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지적까지 받아야 했다.

올 들어 남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또다시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원성이 들끓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즉각 신용평가사들이 유로존 내 긴장을 과장하거나 부추겨 유럽 경제를 위기로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유럽의 주요국 지도자들은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신용평가사들을 규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유럽의 독자적인 신용평가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신용평가사 개혁 문제는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의제의 하나로 올라 있기도 하다.

1997년 말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갔을 때 신용평가사들은 우리에게 저승사자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이들은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을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마구 떨어뜨렸다. 이는 IMF와의 협상에서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사실 아시아 국가들은 재정상태와 외환보유액 등이 양호해도 서구에 비해 낮은 신용등급을 받는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아시아 국가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신용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신용평가기관인 다궁(大公)국제신용평가가 11일 주요 50개국 신용등급을 매긴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은 미국보다 3단계 높은 10위이고, 한국은 14위로 평가됐다. 다궁 관계자는 “부채상환 능력 위주로 신용등급을 좌지우지한 서방 평가기관과는 적용기준이 다르다”고 차별화를 강조했다. 중국이 주장한 대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체계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안경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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