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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관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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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3-24 21:58:24 수정 : 2011-03-24 21:5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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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행정 업무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현대 국가에서 관리의 특정 직위에 따른 권한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권한이 인물이 아니라 직위 자체에 부여된다. 행정이 비인격적으로 집행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매우 합리적인 조직 형태로 봤다. 관료제는 현대적 합리성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과거 왕국이나 제국은 지배자가 곧 국가였다. 왕과 관리와 백성 간의 통치라인은 인격적으로 구성되고 관리 임용도 능력보다는 신분이 우선시됐다. 관직이 높은 관리는 하급 관리의 인신까지 마음대로 다룰 정도로 전권을 행사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민초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 이유다. 예컨대 청나라 때는 관리들이 조세에서 떼어먹을 몫을 미리 수당으로 지급하는 양렴은(養廉銀)을 별도로 얹어줄 정도였다.

현대 관료제는 베버의 견해와 달리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않기 일쑤다. 법 규정을 악용하고 남용하는 방식으로 부패와 비리에 연루된다. 더구나 관료제의 각 직책은 임무와 권한이 형식적 효율성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비능률적인 경우가 많다. 관료제의 병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생산수단이 대부분 국유화되어 있어 관료집단이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탓이다.

일본 정부가 동북부 대지진 참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뿌리 깊은 관료주의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지진 피해 지역 관공서 창고에 국내외에서 답지한 구호품이 쌓여 있지만 이재민들은 물자 부족에 허덕여야 했다. 한시가 급한데도 당국이 통행 규정이나 관련 매뉴얼에 집착해 제때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국 언론이 폭력조직인 야쿠자만이 허가를 받지 않고 신속하게 구호활동을 벌이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꼬집을 정도다. 원전 운영업체와 규제 당국 간의 부적절한 유대관계도 드러났다.

일본이 패전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급성장하기까지는 관료들의 역할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간 지진과 원전 안전신화를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매뉴얼에 따라 사회 시스템을 적절히 관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이번 사태를 통해 매뉴얼에만 의존하는 관료주의의 폐해가 어떤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체험했다. 관료주의 병폐 극복이라는 또 하나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일본의 이번 원전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다.

안경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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