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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서해 ‘굴업도’에 예술섬 추진 건축가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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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12 18:12:03 수정 : 2012-11-12 18: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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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함께 나누고 소통해야 할 공간” 나를 치장해 주는 인터뷰는 사양하겠다.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인근 레스토랑에서 만난 건축가 김원(69)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요란스럽게 드러내려 하지 않는 그의 건축 스타일은 어쩌면 그의 성품의 산물일 게다.

그는 자신이 거창하게 소개되는 것이나, 멋진 건축물을 남기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급한 일이 있다며 생각지도 않았던 서해의 ‘굴업도’ 문제를 거론했다. 평소 그의 건축철학에 공감한 바 커 건축을 화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던 의도를 일단 접을 수밖에 없었다.

모 재벌이 보류됐던 굴업도 골프장 건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신청하면서 그의 행보가 바빠진 것이다. 동강댐 건설 백지화에도 앞장섰던 그가 이번엔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대표를 맡았다. 혹자는 건축가가 왜 환경문제에 그리 깊이 개입하나 할 수도 있다. 적어도 건축도 환경을 소비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사는 집도 ‘자연’이란 점을 환기시킨다. 환경을 모른 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굴업도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기 위해 모임에서는 13∼25일 통의동 류가헌에서 굴업도 사진전을 연다. 수만년 해풍이 깎아 만든 아름다운 해안 언덕과 2009년에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숲 등 순수한 자연이 오롯이 남아 있는 섬 풍경을 담았다. 박명숙무용단이 굴업도를 주제로 한 춤도 선보인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섬을 무대 삼아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굴업도 개발 반대운동에 문화예술인들이 나선 것은 단순히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예술 섬’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자연과 현대 건축·미술을 조화시킨 일본의 나오시마나 독일의 인젤 홈브로이히와 같은 세계적 명소가 될 가능성을 굴업도는 가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환경단체와 재벌그룹의 싸움 구도는 이젠 식상하지요. 아름다운 섬은 국민재산이라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소유를 넘어서 예술 섬을 만들면 소유자에게도 만족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건축가 김원이 그가 원안대로 마무리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찾았다. 그는 “작지만 공간의 유연성이 큰 한국건축의 건축철학이 크기와 외형으로만 치닫는 현대건축의 딜레마를 해결해주는 키워드”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출범한 ‘굴업도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는 소설가 이호철, 음악가 강석희, 화가 김정헌·윤명로·임옥상·이종상·홍정희, 조각가 강은엽·정보원, 사진가 배병우·주명덕, 만화가 박재동·이현세, 무용가 김숙자·홍신자, 연극인 손숙·박정자, 연출가 표재순, 시인 조용미·채호기, 문화평론가 김화영, 미술평론가 김홍남·김홍희, 출판인 이기웅·김태진, 패션디자이너 김동순·루비나, 건축가 승효상 등 문화예술계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환경운동의 근저에는 자연은 민주적이란 철학이 깔려 있다. 모두가 함께 나누고 소통해야 할 공간이라는 것이다.

“산악지형에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집’은 작게 짓는 것이 미덕이지요. 초가삼간에 자족했던 선인들의 ‘사치의 경지’를 헤아려 볼 시점입니다.” 그가 살고 있는 옥인동 한옥도 온돌방 한 간, 마루 두 간의 삼간 집이다. 창을 열면 인왕산 풍경이 마당을 통해 달려들어 온다.

“대학원 학생들이 20명이 몰려와 두 간 마루에 모두 앉아 막걸리를 마셔도 비좁다는 생각을 안 해요. 유연성이지요. 1∼2인용 침대와 식탁 등이 차지하는 서양식 한정된 기능주의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보자기 같은 느슨함이 사람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다같이 살 수 있는 물렁물렁한 건축을 강조한다. 공간에 대한 사유 전환의 촉구다. “큰 절의 법력 높은 최고 어른을 방장스님이라고 하잖아요. ‘사방(方)’으로 1장(丈), 즉 가로 세로 3m인 방에서 부처님의 수제자인 유마거사가 자신을 문병 온 3만2000명을 모두 받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죠. 한 길 크기의 작은 방에 수많은 사람이 들어가도 모자라지 않았다는 설화는 형태나 기능에만 집중하는 현대 건축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건축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집을 분신인 양 폼나게 짓는다. 하지만 그는 삼간 한옥도 외지에서 헐려진 한옥을 옮겨와 손만 봤다. “제 자신의 건축철학과 표리부동해서는 안되지요. 사는 것조차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집’ 예찬론자인 그는 500㎡(약 150평) 아파트에 사는 한 재벌 친구를 부암동의 한옥으로 이사케 했다. “한동안은 비좁고 몸이 부딪혀 적응하는 데 힘들어 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면서 요즘엔 너무나 행복해합니다. 인왕산을 정원 삼아 새소리를 들으며 사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습니다. 문지방 없는 아파트의 편리함에서 ‘필요한 불편’을 선택한 셈이지요, 불편은 적당히 움직이게 하는 요인도 됩니다. 좋다, 넓다의 개념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는 크기와 외형 위주로 치닫는 도시건축 등 현대건축의 딜레마를 푸는 데 한국의 건축사상을 유일한 복음으로 여긴다. 최근 대형 아파트의 가격 추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집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케 하는 계기를 주고 있다.

15년 전 그는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에게 종묘를 보여준 적이 있다. “그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강아지 오줌 마려운 듯 왔다 갔다 하며 머리만 갸우뚱거리는 거예요. 특별한 기교를 찾을 수도 없고 균형(balance), 조화(harmony), 비례감(proportion), 대비(contrast) 등 어떤 서양의 예술적 잣대로도 설명할 수 없고, 왜 감동을 주는지 이해가 안됐던 것이지요.”

그는 나름대로 설명해줬다. 종묘는 하늘을 감동시키려 만든 건물이라고. 조상 신명들을 모시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보니, 인간의 예술적 기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하늘이 좋아할 만한 기준에 맞추다 보니 그런 것인 것 같다고. 하늘이 좋아할 만한 원초적인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여주다보니 우리의 머리로는 알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감동을 주는 것일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는 83세의 프랭크 게리가 9월 한국을 찾았을 때 다시 만났다. 프랭크 게리는 온가족을 데리고 유럽 여행길에 다시 종묘를 보기 위해 일부러 한국을 들른 것이다. LA에 아들·며느리와 함께 살 집을 종묘 콘셉트로 짓기 위해서다. “프랭크 게리는 자신이 이렇게 엄청난 종묘를 이전엔 알지 못했다는 것이 창피하다고 고백했어요.”

그의 한국건축에 대한 애정은 35년 전에 펴낸 ‘한국의 고건축’이 말해준다. 50권을 계획했지만 7권을 만들고 손을 놔야 했다. 최근 삼성 측에서 지원을 약속해 다시 책을 엮어 나갈 예정이다. 방한했던 프랭크 게리가 그 가치를 삼성 측에 얘기해서 성사가 됐다.

그는 건축가는 ‘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원안 설계대로 완성시키면서 뼈져리게 느꼈다. “영국의 유명한 종교건축가인 아서 딕슨이라는 건축가가 2차대전으로 중단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아서 딕슨의 고향인 리버풀 도서관에서 어렵게 원도면을 찾아냈지요.” 그는 처음엔 나름의 욕심을 담아 철골이나 유리로 설계할 작정이었다. 원도면을 보면서 그런 악마의 유혹을 어렵게 뿌리칠 수 있었다.

“중간을 끊어서 마무리한 도면을 살펴보니 벽에 창문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벽으로 임시방편으로 막은 것이지요 마치 훗날에 이 도면을 보는 자에게 미완성된 도면을 완성시켜 달라는 편지 같았습니다. ”

그가 또 주목한 것은 이방인 건축가가 종교건축임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했다는 점이다. 한국 창호의 격자무늬와 돌 서까래, 재래 기와 등의 채택은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것이었다.

“건축이 삶의 방식을 담는 인문학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죠.” 국립국악당, 독립기념관, 서울종합촬영소, 코엑스 등이 그의 손에서 그려진 건축물들이다.

편완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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