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광고에 대한 논란은 10여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2003년 산와머니가 6개 케이블TV 채널을 통해 ‘누에콩’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 광고를 방영하기 시작했고, 러시앤캐시도 2004년 첫 케이블TV 광고를 했다. 2005∼2006년에는 지상파TV에서도 방영됐지만, 2007년 지상파 3사가 대부업 광고를 금지하는 내용의 자율협약을 맺으면서 현재는 케이블TV와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만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케이블TV와 종편의 접근성이 확대되면서 ‘지상파TV 금지’란 규제는 사실상 의미가 없는 실정이다. 금융소비자단체들은 TV광고는 노출 대상이 넓고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금융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내용의 광고를 반복적으로 접하면 대출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대부업체의 광고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아프로파이낸셜그룹이다. 아프로파이낸셜은 업계 1위인 러시앤캐시와 함께 미즈사랑, 원캐싱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러시앤캐시는 ‘무과장’ 캐릭터를 이용해 ‘쉽고 빠른’ 대출을 홍보하는 광고와 함께 대부업체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순기능편’을 동시에 내보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무과장이 등장하는 광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카드 연체만 없다면 누구나 100만원을 빌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100만원 때문에 아쉬운 소리 할 필요없이 무 상담 대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과장 광고가 직접적인 광고라면, ‘순기능편’은 좀더 간접적이고 ‘세련된’ 방식을 취한다. 올해 7월부터 방영됐던 ‘순기능 1편’은 대부업체를 ‘택시’나 ‘편의점’에 비교해 논란이 됐다. 광고 속 남성은 러시앤캐시에서 대출을 받았다며 “바쁠 땐 쉽고 간단하거든. 버스랑 지하철만 탈 수 있나. 바쁠 땐 택시도 타고”라고 말한다. 버스·지하철이나 할인마트보다는 비싸지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러시앤캐시를 ‘다소 비싸지만 편리한 곳’이라 묘사한 것이다. 이 광고는 대출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중단됐다. 지난해 11월 28일부터 방영 중인 ‘순기능 2편’은 러시앤캐시를 ‘이자가 높지만 서비스가 훨씬 편리한 곳’, ‘은행이나 카드회사와 하는 일은 비슷한 곳’으로 표현한다.
여성 전용 대부업체 미즈사랑의 ‘전주편’ 광고에서는 ‘카레를 못 만든다고 구박을 받았다’는 여성에게 다른 여성이 고민 말라며 ‘1분 카레’를 내미는 장면이 등장한다. ‘손이 많이 가는 카레’를 ‘은행 대출’에, ‘쉽게 조리 가능한 1분 카레’를 ‘대부업 대출’에 비유한 것이다. ‘조금 비싸더라도 편리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내용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이 같은 광고들은 단순히 해당 업체의 이미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대부업 전체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윤형호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를 정확히 담고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대부업 광고는 대출이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며 “정보는 없고 이미지만 전달해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등 대부업체들은 ‘쉽고 빠른 대출’만을 강조하는 TV광고를 경쟁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
전문가들은 TV광고는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고 말한다. 금융정의연대가 서울지역 4∼6학년 초등학생 361명에게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7%(342명)가 ‘대출 광고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TV에서 대출광고를 접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79.2%(286명)에 달했으며, 대부분의 어린이가 광고의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부업체 광고들은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귀여운 캐릭터, 따라하기 쉬운 노래 등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다른 광고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계연 금융정의연대 사무국장은 “어릴 때부터 ‘돈을 빌리는 행위’를 ‘친숙한 것’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반복적으로 접할 경우 성인이 되어서도 ‘돈은 필요하면 언제든 쉽게 빌리면 되는 것’이란 그릇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광고가 지나치게 ‘밝은 면’만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쉽고 빠르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하고, 고금리의 위험성이나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어두운 면’은 생략하기 때문이다. 2011년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대부업체들은 TV광고를 할 때 경고 문구 등을 광고 시간의 5분의 1 이상 내보내야 한다. 그러나 광고 한 편당 소요시간이 15∼30초란 점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규제만으로는 위험성을 알리기엔 한계가 있다. 실제 금융대부협회가 대부업 이용자 35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는 법정 최고금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광고 규제 논란 가중
이처럼 대부업체의 TV광고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7개 금융소비자단체는 지난해 11월 ‘금융소비자네트워크’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광고 규제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학영 의원(민주당)은 대부업체의 TV광고를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길 시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대부업체들은 “광고는 기업 고유의 권리”라며 “합법적인 광고를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자체적인 노력을 통해 과도한 광고는 걸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부금융협회는 2012년 4월 부적절한 광고를 걸러내기 위해 광고심의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49건 중 절반에 가까운 24건을 걸러냈다.
그러나 대부업 광고를 규제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대부업체 광고를 ‘담배 광고’에 비유한다. 담배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담배 광고는 규제되는 것처럼, 합법적인 상품이라 하더라도 그 상품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면 광고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학영 의원은 “가계부채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고, 극단적 상황에 치닫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며 “최소한 영향력이 큰 TV에서만이라도 대출을 조장하는 대부업 광고의 전면적인 금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유나·서필웅 기자 yo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