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앞두고 마지막 모의고사가 실시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시험 시작 전 기도를 하고 있다. |
지난 6일 서울 은평구의 한 여고에서 근무하는 교사 김모(29·여)씨는 고3 학생들이 교실 뒤에 모여 나누는 이같은 대화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이날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른 학생들은 실망스러운 가채점 결과에 자살을 희화화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 점수는 뭐 자살각(‘자살하기에 알맞다’는 뜻의 신조어)”, “나랑 같이 한강가자”며 자살이 가벼운 일인 듯 농담처럼 대화를 주고 받았다.
김씨가 “죽는다는 말을 쉽게 하면 안된다. 부모님이 들으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느냐”고 지적했지만 학생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김씨는 “시험이 끝난 뒤면 아이들이 ‘죽고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며 “이런 대화를 들을 때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애들에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두 달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학업·입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10대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불안감에 따른 우울, 두통 증상부터 심할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지난 6일 부산에선 수능을 앞두고 오르지 않는 성적에 심리적 압박을 느낀 고3 학생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가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수능을 앞두고 성적을 비관한 고3 수험생이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출동한 경찰관에게 무사히 구조됐다. 지난 5일 밤 부산 남구 용호동 섶자리 앞바다에서 출동한 경찰이 바다에 뛰어든 A군을 구조하고 있다. 부산경찰청 제공=연합뉴스 |
10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이후 9∼24세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단연 자살로 꼽혔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 이 날로 15년째를 맞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청소년 자살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현실이다.
청소년을 자살로 내모는 가장 큰 원인은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 중고생(만14∼18세) 5000명을 대상으로 사회·심리적 불안요소를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학업(32.9%)과 진로문제(28%)를 꼽았다. 빈번한 교육입시제도 변경을 꼽은 청소년도 17.6%에 달했다.
이 양이 찾은 심리상담소에는 학업 스트레스에 따른 자살 상담이 통상 하루에 4∼5건 정도였지만 이 달 들어서는 4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 중에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A(18)군은 입시 스트레스로 괴로워하다 집에서 두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다. 고3이 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증상을 겪었지만 부모님과 학교에서는 모두 공부만 강요하고, 정작 위로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A군은 “고3이 돼서 부담이 커졌는데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도 마음을 터놓을 수 없어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김도연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 대표는 “매년 수능을 앞두고 학생들의 불안과 고통은 반복되는데 정책 당국은 교육정책을 자주 바꾸는 데 이어 비일관적인 예방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며 “매년 새학기에 실시되고 있는 자살 고위험군 분류에 맞는 예방 프로그램 개발과 더불어 청소년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춘 대책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