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화해 기류가 본격화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큰 북한 비핵화가 곧 실현될 것처럼 조급하게 서두르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어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의 비핵화·평화정착 의지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64.7%에 달했고 불신한다는 응답은 28.3%에 그쳤다. 불신 78.3%, 신뢰 14.7%의 이전 여론조사 결과와 천양지차다. 지나친 쏠림현상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선 북한 비핵화의 다음 단계로 뛰어넘으려는 듯한 움직임이 나타난다. 청년층에선 ‘통일이 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말이 공공연히 퍼지고, 중장년층에선 북한 부동산 구입 얘기가 오간다. 경기도 파주 등 접경지역에선 땅값이 치솟아 땅 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인다고 한다.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합의는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는 실정이다. 국제사회 대북제재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처사로 비칠 수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5월 중에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 외교안보분야 고위관리들이 그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선(先) 핵 폐기, 후(後) 관계 정상화’의 리비아식 모델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양보 이전에 북한이 핵무기, 핵연료, 미사일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비핵화의 의미라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우리는 역사를 알고 위험 부담을 안다. 미 행정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들의 약속과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 비핵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진정한 평화는 확고한 안보태세 없이는 어렵다. 그런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화 제스처에 우리의 안보 의지가 해이해진 건 아닌지 걱정이다. 국가 안보는 방심하면 정말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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