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비대위원장이 거듭 강조하고 있는 ‘기조 전환’이 변수다. 한국 보수진영이 신줏단지처럼 모셔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시한 ‘국가주의’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 발언을 한 김 비대위원장은 앞으로 ‘박정희 지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보수진영 핵심인 TK(대구·경북)와 친박(친박근혜)계가 이를 용인할지에 따라 김병준 비대위 성공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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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대위원장이 18일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언하던 중 종이컵에 물을 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
17일 출범한 ‘김병준 비대위’는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취임 이틀만인 19일에 당직인선을 발표했다. 3선 김용태 의원을 사무총장에, 재선 홍철호 의원과 김선동 의원을 각각 비서실장과 여의도연구원장에 내정했다. 당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과 자신을 보좌하는 비서실장, 그리고 당 노선을 이끄는 여연원장을 우선적으로 임명하면서 빠르게 당을 장악했다. 이는 김 비대위원장이 한국당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21일 “김 비대위원장이 한국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상당한 자료를 쌓아두고 공부는 물론이고 해결책도 만들어 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의 정비가 빠르게 되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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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임 후 첫 인선으로 사무총장에 김용태 의원(왼쪽)을, 비서실장에 홍철호 의원을 임명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는 경북 고령 출신이어서 한국당 내 TK출신들과 어느정도 안면을 쌓아두고 있다. 그가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당내에서는 그와의 친분이 있는 의원들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염동열 의원은 국민대에서 행정학 박사를 받았을 때 김 비대위원장이 지도교수였고, 이현재·윤상직 의원은 김 비대위원장과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했다. 주호영 의원은 영남대 정치학과 후배다.
당내 장악을 높이는 것과 별도로 김 비대위원장을 흔들만한 견제세력도 거의 없다. 초선의원들은 19일 회의를 거쳐 ‘김병준 비대위’ 지지선언을 했다. 김 비대위원장을 추대한 김성태 원내대표를 비롯한 복당파들은 그를 흔들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고, 복당파와 대립하는 친박계는 구심점이 사실상 없어 조직적으로 김 비대위원장을 흔들기 어렵다. 김 비대위원장 본인도 당직 인선에서 복당파(김용태·홍철호)와 친박계(김선동)를 고루 등용하는 등 틈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후 있을 비대위원 선임에서도 계파 배려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분간 김병준 비대위는 순항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 비대위원장이 여러차례 언급한 ‘새로운 가치’가 변수다. 김 비대위원장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 하는 인물로 당직 인선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무총장에 내정된 김용태 의원을 두고는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이 내세우는 새로운 가치란 ‘자율’이다. 그는 간담회에서 “국가가 시민사회에 지나치게 개입해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등 주체들이 자율적으로 국가를 만들고, 혁신을 만드는 질서를 꿈꾸고 있다”며 “공동체와 국가는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복지,기회균등,게임 룰을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철학으로 따지면 신자유주의나, ‘제3의 길’과 유사하다.
이는,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된다. 그는 문재인정부도 국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핵심으로 활동했던 참여정부를 문재인정부가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도 여기서 근원한다. 참여정부는 ‘분권’과 ‘자율’을 핵심가치로 추구했기때문에 국가개입을 천명하는 문재인정부는 참여정부 계승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정부가 참여정부를 계승했느냐’는 질문에 최근 통과된 ‘학교 내 커피 판매금지법’을 예로 들며 “제가 정책실장이었으면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을 것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따랐을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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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청와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병준 교육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장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 부분이 당내 균열 요소가 될 수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옹호정서가 강한 TK나 친박계 입장에서는 반발할 요소가 적잖다. 김 비대위원장은 “정책적 방향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달리 갈 수 있다”며 자신이 내세우는 ‘자유’에 반대할 경우 내칠 수도 있다는 강공책을 이미 선언했다. 당협위원장 박탈권한이 있다면서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하고 있다. 당분간은 갈등이 수면 밑에 있는 상황이지만, 김 비대위원장이 본격적인 당 노선 전환을 추구할 경우, 당내 반발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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