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향신문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를 민주당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실이 알려졌다. 노동운동과 노동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진보 학자인 임 교수는 당시 칼럼에서 검찰 인사 사태 등을 언급하며 “깊어진 정치 혐오의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선거에서 민주당을 빼고 찍어야 한다” 등 의견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해당 칼럼을 내보낸 진보언론 경향신문도 함께 고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임 교수와 경향신문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임 교수의 경우 ‘선거에서 민주당을 빼고 찍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고, 경향신문은 해당 칼럼을 그대로 실었다는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칼럼을 게재한 경향신문으로부터 민주당이 나와 경향신문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는 연락을 오늘(13일) 받았다”며 “칼럼 때문에 고발당한 것은 이례적이라 나도 깜짝 놀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검찰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달 말 경향신문에 게재한 칼럼은 언론중재위원회 선거기사 심의위원회에도 회부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사 칼럼을 쓴 필자와 신문이 특정 정당으로부터 고발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칼럼은 통상 정당과 정부 등 권력층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고발당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오늘(13일) 칼럼을 두고 민주당이 나와 경향신문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거는 개개 후보의 당락을 넘어 크게는 정권과 정당에 대한 심판”이라며 “선거 기간이 아니더라도 국민은 정권과 특정 정당을 심판하자고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선거의 이름을 빌리더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는 “전직 판사가 얼마 전까지 대표로 있던 정당이 (나를) 왜 고발했을까”라며 “(비판을) 위축시키거나 번거롭게 하려는 목적일 텐데 성공했다. 살이 살짝 떨리고 귀찮은 일들이 생길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는, 노엽고 슬프다. 민주당의 작태에 화가 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30여년 지난 지금의 한국민주주의 수준이 서글프다”며 “민주당의 완패를 바란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역사를 제대로 다시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전 대표’로 지목된 인사는 법관과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최근 문재인정부 내각에 들어간 추미애 현 법무부 장관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달 말 임 교수는 경향신문에 ‘민주당만 빼고’란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칼럼을 통해 민주당이 국민이 갖는 정치 혐오증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신임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수족을 자르고 야당은 그런 장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며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 지시를 수차례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권 내부 갈등과 여야 정쟁에 국민의 정치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며 “자유한국당에 책임이 없지는 않으나 더 큰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촛불정권을 자임하면서도 국민의 열망보다 정권의 이해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분노로 집권했으면서도 대통령이 진 ‘마음의 빚’은 국민보다 퇴임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6년 겨울, 국민들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정치권력에 대해 상전 노릇을 할 수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 상황은 역전됐다. 정당과 정치권력이 다시 상전이 됐다. 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정권 유지에 동원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의 희망이 한줌의 권력과 맞바꿔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정부에서) 재벌개혁은 물 건너갔고 노동여건은 더 악화될 조짐”이라며 “(이제는) 국민이 정당을 길들여보자.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알려주자. 국민이 볼모가 아니라는 것을, 유권자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정당을 만들자. 그래서 제안한다.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고 강조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