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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은 우리 문화유산의 지형도를 바꿔 놓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모든 것을 바쳤다. 종로 상권을 장악한 거부 전명기의 유일한 상속권자인 그는 스승인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 오세창의 영향을 받아 우리 문화재 수집에 나섰다. 독립운동에 비유되곤 했다. 화가 김병종은 저서 ‘화첩기행’에서 그를 “민족미술의 선구자”라고 불렀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 가운데 국보·보물로 지정된 것만 40여건에 달한다. 고려청자의 백미로 꼽히는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전형필이 30세 때인 1936년 일본인에게서 2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기와집 스무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해에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가 소장하던 고려청자들을 사들이기 위해 공주의 전답을 모두 판 일화도 유명하다. 1938년에는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지어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품속에 품었고 잘 때는 베개 속에 넣어 지켰다고 한다.

1962년 전형필이 사망한 후 그의 유업은 아들과 손자에게 이어졌다. 1966년에는 소장품을 정리·연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이 발족됐다. 보화각의 후신인 간송미술관은 매년 봄과 가을에 특별전시회를 연다. 미술관 규모가 작고 관람체계도 불편하지만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면 정선, 김홍도, 신윤복, 김정희 등이 남긴 진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줄을 지어 늘어선다.

간송미술관이 국보 불상 2점을 경매에 부쳤다. 삼국시대 유물인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고려시대 유물인 ‘금동삼존불감’이다. 국보가 경매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고 해외로 반출할 수 없다. 간송미술관은 2020년 보물로 지정된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았으나 유찰된 끝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매각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개당 1억원의 대체불가토큰(NFT) 100개로 만들어 논란을 빚었다. 간송미술관은 “구조조정을 위해 어렵게 내린 결정”이라고 했지만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국보 2점이 어디로 갈 것인지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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