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몽파르나스’ ‘99센트’ 등 작품 포함
신작 ‘얼음위를 걷는 사람’ 세계 첫 공개
원거리 촬영·압도적 크기·디테일 특징
한계를 넘는 도전정신·작가 의식 경이
최고 3만5000㎞ 상공서 촬영한 작품도
눈 쌓인 땅, 구름이 가득 낀 하늘 색은 서로 분간되지 않는다. 그대로 희뿌연 바탕을 이루더니 흰색 캔버스를 닮아 있다. 겨울 나무 앙상한 가지는 어느 동양화가가 세필로 단정하게 그려진 선들로 다가온다. 화면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지평선과 라인강이 선으로 나뉜 범위 아래, 진한 점들은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 뒤셀도르프 근처 라인강변 목초지에서 얼음 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흰 캔버스 위로 크고 작게 떨어진 진한 물감 드리핑처럼 느껴진다. 이 인파는 화면 어느 부분만 떼어 보더라도 비슷하도록, 균일하게 분산돼 있다. 멀리서 바라본다면, 마치 어느 규칙을 따라 만들어진 패턴, 무늬를 화면에 담은 추상화일 수도 있다는 착각이 든다. 이 비밀의 규칙은 무얼까. 평범한 제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20년도라는 제작년도에서 힌트를 얻는다. 그 규칙은 바로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에 맞서는 사람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다. 눈치를 채고 나면, 압도적 스케일의 화면 속에서 또 다른 힌트가 없을까 파고드는 눈에, 아주 작게 찍힌 경찰차가 들어온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도하러 나온 경찰이다. 사진은 실제 풍경에서 분산된 인파를 보여주기 위해 약간의 편집만 거쳤다.
사진인데 회화가 되고, 사진이기에 대상이 분명 존재하는데도 구상화가 아닌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그 안의 풍경은 시대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속 부자유한 인류의 풍경에서 불편함을, 방법을 찾고 버텨나가는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압도적 화면 크기와 균질한 화면 자체에서 숭고함을 느낄 수도 있다. 현대 사진예술 거장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전시명: 거스키)가 서울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이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오랜만에 대규모 전시를 시작했다. 독일 라이프치히 출신 작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개인전이다. 작가는 한국인에게는 북한 아리랑 축제 매스게임을 촬영한 ‘평양’ 연작으로 친숙한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서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과 ‘스트레이프’(2022)를 포함해 대표작 40점을 선보인다.
그를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첫 작품 ‘파리, 몽파르나스’부터 ‘99센트’, ‘시카고 선물거래소’, ‘평양’ 연작까지, 1984년부터 40년에 가까운 전 시기에 걸쳐, 기념비적 작품들이 골고루 출품됐다. 작가 예술세계를 전반적으로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작가는 사진예술이라는 매체 특성상에서는 사진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 사진의 새로운 역사를 썼으며, 주제 측면에서는 인류와 현대 문명 사회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어느 대상을 촬영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타고난 운명이다. 그런데 그는 사진을 촬영하며 극단적인 원거리 촬영, 압도적인 작품 크기, 이에 대비되는 아찔하게 세밀한 디테일이라는 세 요소를 사수한다. 그 결과 대상을 재현하는 사진이라는 매체 한계를 넘어선다. 사진의 운명을 거스른다.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드넓은 튤립 밭을 촬영한 것인데, 촬영 결과물은 철저한 수평선들이 화면을 채운, 미니멀리즘의 추상회화가 돼버리는 식이다. 운명을 거스르는 의지, 한계를 넘으려는 도전정신, 작가의식에 담긴 혁신성에 사람들은 경이로움을 느껴왔다.
그의 사진은 다른 차원 세계로의 안내자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절로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무질서와 혼돈의 현실을 찍지만 그의 원거리 촬영 결과 질서를 드러내 또 한번 경이롭다. 미술사가 마이클 프리드는 이런 그의 작품을 두고 “자유롭고 무중력적이며 대상으로부터 이탈한 사진적 ‘보기’를 이끌어낸다”고 평하기도 했다. 작가는 실제로도 자신이 추구해온 원거리를 우주로까지 끌어올린다. ‘바다’ 연작이다. 구르스키 작품 가운데 최고 높이인 3만5000㎞ 상공에서 촬영한 위성사진들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가 대가로 평가받는 또 다른 이유이자, 그의 사진이 주는 또 다른 지적 자극은 미술사의 다양한 걸작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선물 거래소’연작은 미국 추상화가 잭슨 폴록을 연상시킨다. 새까만 배경 위에 원근법이 제거된 화면, 화면에 어떠한 중심도 없이 균일한 크기의 대상들이 곳곳에 자유로우면서도 혼란스럽게 퍼뜨려 있는 화면이 잭슨 폴록의 물감 드리핑 같아서다. 아파트를 촬영해 극적인 수평 수직의 그리드를 보여주는 ‘파리, 몽파르나스’(1993)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컬러 차트와 유사하고, 조선소 선박에서 극적인 수평 수직 그리드를 포착하는 ‘크루즈’(2020)는 솔 르윗의 거대한 미니멀리즘 조각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관람객이 연상하도록 자극하는 것을 넘어, 직접 미술사의 걸작을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독일 전직 총리 뒷모습을 담은 작품 ‘회상’(2015)에서는 바넷 뉴먼의 작품을 자신의 사진 속에 직접 배치한다.
기민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을 충실하게 기록해두면, 그건 ‘역사’라는 선물이 된다. 구르스키의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이다. 그는 세계 자본주의와 관련된 각종 형태와 구조물을 담아왔는데, 그 기록이 저절로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99센트’(1999년)와 ‘나짱’(2004), ‘아마존’(2016)을 비교해가며 보면 몹시 흥미롭다.
‘99센트’는 로스앤젤레스 한 대형 할인점을 촬영해 당대 소비문화를 드러낸 것이다. ‘나짱’은 이케아에 납품할 가구를 만들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을 통해 대규모 수공업적 생산 현장을 보여준다. ‘아마존’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거대한 아마존 물류센터 선반에 물건이 빼곡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은 ‘나짱’ 속 베트남 여성이 촬영을 위해 모두 주황색 옷을 입거나, ‘아마존’에서는 선반을 먼저 찍고 물건을 합성하는 등 주제를 부각하기 위한 일부 인위적 개입을 거친다. ‘99센트’에서는 대형 마트에 끝없이 진열된 똑같은 규격의 획일적 상품들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당대 자본주의를 보여주고, 개인별 배송 시대의 상징인 ‘아마존’에서는 주문자 개인별로 상품이 차려져 다양화된 듯 하면서도 그 대량 생산과 소비의 본질이나 자본주의 폐해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 비교, 대조된다. ‘나짱’은 그런 상품들이 지구 어딘가에서 공장 기계값만 못한 노동력에 의해 대량 생산되고 있음을 드러내며, 두 작품을 잇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가 된다.
2009년작 ‘시카고 선물 거래소Ⅲ’은 ‘플로어 트레이딩’이라는 대면 거래방식을 포착한 것이기에, 디지털시대를 맞은 지금, 또는 그 이후의 거래소 풍경이 구르스키의 손에서 어떻게 탄생할지 기대된다. 8월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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