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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와 경쟁 그리고 음주·호색… 남성들의 ‘고장난’ 인간관계

입력 : 2025-02-22 06:00:00 수정 : 2025-02-20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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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 터놓을 용기 없는 순간순간
감정들 꾹꾹 누르며 사는데 익숙
나이들수록 인간관계 치여 고립
남성성 전쟁터 전락한 팍팍한 삶
“취약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변사람에 진솔하게 다가가야”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맥스 디킨스 / 이경태 옮김/ 창비/ 2만4000원

 

저자는 영국의 코미디언이다. 그의 공연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을 비롯한 영국 내 각종 순회공연에서 매진 행렬을 이뤘다. 영국 최초의 스탠드업 코미디 전용 극장 ‘후플라’의 공동 디렉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잘나가는 연예인 ‘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30대 중반의 그가 여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던 어느 날, 결혼식 들러리로 세울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나는 왜 친구가 없지?” 외마디 소리를 지르게 된다. 주변의 다른 남자도 그런가 확인하기 위해 구글에 “결혼식 들러리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요?”라고 검색했다. 그러자 같은 처지의 예비 신랑들이 저자와 비슷한 하소연을 하는 게시물이 쏟아졌다. 그곳에서 가명으로 한밤중에 자판을 두들겨가며 필사적으로 외로움을 토로하는 ‘문제 있는’ 남자들의 슬픔을 확인하게 된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는 영국의 코미디언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시와 경쟁, 조롱과 모멸로 시작해 높은 자살률과 고독사로 마무리되는 비뚤어진 요즘의 남성문화를 탐색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뱅크

책은 저자 자신이 겪은 인간관계 실종 사례를 바탕으로 과시와 경쟁, 조롱과 모멸, 음주와 호색으로 점철된 남성집단의 문화와 그에 따른 남성들의 ‘고장난’ 인간관계를 다룬 책이다.

책에 따르면, 2019년 영국의 시장조사 및 데이터 분석기업 ‘유고브’ 조사에서 남성 5명 중 1명은 가까운 친구가 없다고 했다. ‘모벰버 재단‘(남성 질환과 건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운동을 하는 글로벌 단체) 2018년 조사에서는 남성 3명 중 1명이 제대로 된 친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울 때 의논할 수 있는 친구가 몇 명인지 물었을 때, 남성 절반이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회적 문제나 위기 상황에 대해 다룬 ‘사마리안 보고서’는 2012년 남성 자살의 큰 요인으로 친밀한 사회관계 부족을 꼽았다. 남성들은 자기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위기 지점에 이를 때까지 방치된다. 속내를 터놓을 용기가 없어서 순간순간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다가 미칠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다는 남성이 적지 않다.

맥스 디킨스 / 이경태 옮김/ 창비/ 2만4000원

“외로움이 남성을 죽이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외로움이 하루에 담배 열다섯 개비를 피우는 것보다 건강에 더 해롭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외로움은 과도한 음주, 운동 부족, 비만보다 건강에 더 해롭다. 암, 심장병, 뇌졸중, 치매, 면역체계 장애, 섭식 장애, 약물 남용, 알코올중독 등 각종 질병과 외로움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연구들도 있다. 친구와 좋은 사람 없이는 행복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수십 년간 반복된 연구결과에 대해 생각한다.”(37쪽)

실제로 이런 상황에 놓인 외로운 남성들이 도처에 널렸다. 공론장에서의 소통하는 대신 ‘남초 커뮤니티’의 배타적 세계관에 열중하는 20대 청년 A씨, ‘일에 치인다’는 핑계로 가정과 교우에 소홀한 채 ‘혼술’로 우울한 나날을 한탄하는 40대 중년 B씨,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정처 없이 떠돌다 불현듯 소식이 끊기고 만 60대 노인 C씨 등. 저자를 비롯한 대부분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으며 고립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 그럴까? 이 땅의 남성들은 ‘남자다움’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보다 돈을 더 잘 벌어야 하고, 성(性)적 행위를 더 욕망하고 탐닉해야 하며, 육체적·지적으로 상대방을 뛰어넘어야 한다. 성격은 ‘쿨’하고 호탕해야 하며, 삶에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야 한다. 그 밖의 방식은 ‘남성적’이지 못한 것으로 치부돼 조롱과 모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은 철저히 금기시된다.

남성성을 향한 집착과 경쟁 속에서 남자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도움을 청하지도, 다른 남자의 문제에 대해 공감하지도 않는다. 남자들에게 삶의 문제란 ‘독립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홀로 해결한 이는 성취를 이룬 ‘진짜 남자’로 거듭난다. 그러지 못한 경우는 ‘패배자’로 낙인찍힌다. 이런 남성 사회에서 남성 각자는 자신의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한 채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린다. 유대감 실종과 정서적 빈곤에 따른 남성들의 고립 문제는 전 세계 남성을 사회적 공간으로부터 몰아내고 있으며, 이들의 삶에 명백하고 실제적인 위협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남성의 관계 결핍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가는 것. 남성 사회의 일원으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나의 바람과 취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위의 친구나 이웃에게 먼저 한발 다가가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왜곡 없이 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나 외롭다!”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인간관계가 ‘외로운 섬’ 신세라고 여기는 동병상련의 남성 독자에게 자기성찰의 기회를 갖게 하는 책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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