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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사법에서 선출로… 권력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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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30 23:17:08 수정 : 2025-09-30 23:17:07
이귀전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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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도구·방패였던 檢·법원
독립 강화가 역설적으로 권력화
尹정권서 절정과 한계 동시 표출
선출권력처럼 ‘책임’ 제도화해야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국민주권,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남긴 이 말은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었다. 권력의 출처와 역할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귀전 정치부장

예상대로 반발은 거셌다. “삼권분립을 훼손한다”, “사법 독립을 부정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지금 벌어지는 논란을 단순히 권력 다툼으로만 보면 안 된다. 핵심은 비대하게 성장한 사법 권력이 국민이 직접 선택한 선출 권력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다.

한국 현대정치에서 검찰과 법원은 감시자의 역할을 넘어 정치의 변수로 작동해 왔다. 군사정권 시절 검찰은 정권의 ‘손발’로 움직였고, 법원은 긴급조치 사건에서 침묵하며 정권의 ‘방패’가 됐다. 민주화 이후 제도적 독립성을 보장받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결과는 사법 권력의 비대화였다. 검찰은 선택적·봐주기 수사로 정국의 흐름을 흔들었고, 법원은 선거 소송과 정치 사건을 지연시키며 정치의 분수령을 쥐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집권은 이 흐름의 상징적 장면이었다. 검찰 출신 대통령의 등장은 사법 권력이 정치 권력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통치 방식은 검찰 권력 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여당과의 조율을 회피한 채, 통치 수단으로 비상계엄을 꺼내 들며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사법 권력이 정치 권력의 정점에 오른 듯했지만 동시에 그 권력이 무한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문제는 사법 권력이 구조적으로 책임에서 비켜서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무리한 기소를 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았고, 법원은 잘못된 판결에도 제재받지 않았다. 퇴직 후 전관예우와 변호사 개업을 통해 다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법조인=정의의 보증수표’라는 착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자격증은 정의의 보장이 아니다. “법의 이름으로”라는 구호는 때로 정의의 방패라기보다 권력 확장의 면허로 쓰여 왔다. 더 이상 그 면허가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 발언을 두고 “선출 권력이 우위라면 대통령 탄핵은 왜 헌재가 최종 결정하는가”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탄핵은 국회가 국민의 대표로서 결정을 내리고, 헌법재판소가 법적 정당성을 심사하는 분업 구조일 뿐이다. 그것이 곧 사법부의 우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의 위치 다툼이 아니라 국민에게 위임받지 않은 권력이 독자적으로 군림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선출 권력은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심판받지만, 사법 권력은 직접적인 평가를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강도 높은 투명성과 책임이 요구된다.

최근 대법원이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을 이례적으로 신속히 처리한 것도 논란을 불렀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리에만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치적 고려라는 비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법부가 스스로를 “정치와 무관하다”고 포장하는 순간, 국민의 불신만 더 키운다.

사법 개혁은 특정 정권의 정치적 어젠다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생존 과제다.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 구조를 해체하고, 법원의 인사와 사건 배당을 투명하게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특히 전관예우는 국민 신뢰를 무너뜨리는 치명적 병폐다. 퇴직 후 취업 제한과 수임 제한 같은 제도적 장치 없이는 사법 개혁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 노무현 ‘참여정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로 이어지는 흐름은 “국민이 주인”이라는 원칙을 공유한다. 사법 권력이 최종 결정권자인 듯 행동해 왔지만, 이제는 국민이 선택한 선출 권력으로 무게추가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권력이 위에 있느냐가 아니다. 그 권력이 국민의 위임에 충실한가,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가 핵심이다. 사법 권력도 국민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을 위한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의 정부.” 링컨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법 권력도, 선출 권력도 국민이 빌려준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이 특권이 아닌 책임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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