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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동영상' 유출에 삶 산산조각… 호소할 곳도 없었다

입력 : 2011-04-19 09:44:36 수정 : 2011-04-19 09: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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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A씨의 ‘끔찍했던 6개월’
햇볕이 따스한 16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 찻집에서 A(25·여)씨를 만났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탓일까. 첫눈에도 그의 얼굴은 눈동자가 텅 빈 것처럼 생기가 없었다. 지난 6개월간 인터넷상에서 ‘○○녀’로 불리다가 몇 차례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다.

지난해 10월 어느 토요일 새벽. IT업체에 다니던 그는 평소처럼 미니홈피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쪽지 한 통이 와 있었다. ‘○○님 동영상이 돌아다닙니다. 연락해주세요.’ 결혼을 앞둔 남자친구와 찍은 2분 분량의 성관계 동영상을 본 네티즌이 보낸 쪽지였다.

깜짝 놀라 먹먹해졌다. 동영상뿐이 아니었다. 개인 사진 200여장이 압축파일로 올려져 있었다. 거주지와 출생연도, 실명까지 공개됐다. 동영상 첫 화면에 그의 사진이 배치되는 등 편집까지 돼 있었다. IT업무상 자주 드나들던 P2P를 통해 A씨 노트북컴퓨터에 있던 파일이 자신도 모르게 유포된 듯했다. 가족이 깰까봐 입을 가린 채 엉엉 울었다. 바로 남자친구를 불러 경찰서로 가서 피해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고소장을 낸 뒤 연인은 동이 트는 하늘을 보며 서로 다독였다.
파일공유 방식인 토렌트(Torrent)는 동영상과 사진 등 파일을 직접 주고받는 기존 P2P 방식과 달리 ‘마그넷 주소’를 입력해 온라인상에 조각조각 분산된 파일을 모아 동영상과 사진을 구현해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처벌 대상을 특정짓기가 쉽지가 않다. 사진은 토렌트 방식으로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하는 다양한 사이트들.
고소로 일이 수습되길 바란 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인터넷에서 파일은 거미줄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제목으로. 그는 회사에 휴가계를 내고 남자친구와 PC방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웹하드를 샅샅이 뒤져 파일들을 찾아냈다. 해당 사이트에 전화와 이메일로 파일 삭제를 요청하고 확인하는 일이 매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한번은 그와 남자친구 둘 다 지쳐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조용한 곳을 찾아 저 세상으로 가자”는 말도 했다. 둘이어서 그나마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울고 나선 “정신 차리자”며 서로 격려했다.

노력 끝에 P2P 웹하드상 확산세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얼마 안 가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서 일이 터졌다. ‘토렌트’ 방식에 필요한 ‘마그넷 주소’(파일위치정보)가 공개됐다. ‘magnet:?xt=urn ∼’처럼 언뜻 봐선 간단한 주소 공유일 뿐이지만 이 주소를 실행하면 수많은 네티즌 컴퓨터 속에 토막토막 쪼개져 있는 파일들을 끄집어내 동영상과 사진을 내려받을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마그넷 주소는 네이버 등 주요 포털의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강풍 속 산불처럼 번져나갔다.

연락이 끊긴 친구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잘 지냈느냐”고 묻는 전화였지만 A씨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몇몇 친구는 조심스레 ‘그 일’을 묻기도 했다. 회사에도 금세 소문이 났다. 한 공유사이트 댓글에 적힌 글은 그의 가슴에 칼날처럼 박혔다. ‘얘, 왜 이러고 사냐. 내 중학교 동창인데….’ A씨는 마그넷 주소 확산을 막기 위해 여러 기관을 찾았다. 한결같이 냉랭한 반응이었다. 몇몇 경찰서는 “처벌이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했다.

“경찰서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벼랑 끝에서 그의 손을 잡아 준 곳이 서울의 한 경찰서였다. 이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느냐. 한번 해보자”고 격려했다. 아내의 출산을 앞둔 한 경찰관은 퇴근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기 일처럼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조사를 시작했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나갔다. 일부 네티즌은 수사 대응지침을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 ‘합의금을 노린 ×’, ‘인터넷 창녀’, ‘경찰이 이× 얘기만 듣는다. 모종의 거래가 있다’는 ‘악플’(악의적인 댓글)도 나돌았다. 하지만 토렌트 이용자도 처벌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악플러도 꽁무니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는 정말 운이 좋은 사례다. 스스로 IT에 밝아 게시자 정보를 추적했고 남자친구는 버팀목이 되어줬다. 헌신적인 경찰관도 만났다. 그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회사에 사표를 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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