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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12> 쿠바 바라코아

입력 : 2008-01-12 10:38:45 수정 : 2008-01-12 10: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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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나라서 새해를 맞다
◇바라코아의 길거리. 오래된 차들이 곳곳에 서 있다.(왼쪽)◇쿠바 음악의 본고장인 산티아고 데 쿠바의 한 가게. 허름한 가게 안에서 연주하는 그들의 실력은 단연 최고다.
“여행은 커뮤니케이션이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많은 것을 알수 있지.” 친구들과 쿠바의 동쪽 끝 도시로 해돋이 여행을 가던 중 동행하게 된 이탈리인 알렉산드로. 처음 경계심을 갖고 쌀쌀맞게 대했던 탓에 여행 내내 나를 철없는 아가씨쯤으로 취급해 항상 티격태격했다. 하지만 내게 에스파냐어를 배우도록 자극을 준 사람이었다. 새해전날 있었던 마을축제에서 밤새도록 신나게 춤을 추는 사이 새해는 밝았고 이후 남미여행 내내 에스파냐어학습에 대한 전의가 활활 타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한글학교 선생을 하고 있던 향란, 미란과 함께 쿠바 일주 여행을 떠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쿠바 음악의 본고장인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에서 근교의 성당을 구경하러 가려는데 한 남자가 다급하게 나타났다. 자기도 여행자인데 우리가 가려는 곳에 버스편이 없으니 차를 함께 렌트하잔다.

‘무슨 소리지? 버스 있는 거 알고 왔는데….’

딱 보니 멀쩡하게 생겨서 여행자들에게 사기 치는 나쁜 사람인 것 같아 쌀쌀맞게 굴었는데,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행자가 맞았다.

그의 이름은 알레산드로. 한 달 동안 쿠바를 여행하고 있는 이탈리아인이었다. 다음날 바라코아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친절하게 그를 대했다.

바라코아에 가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향란의 제안 때문이었다. 쿠바의 동쪽 끝인 바라코아에서 1월 1일 해돋이를 보자는 말은 누가 들어도 매력적이었으니까. 동해도 아니고 쿠바의 가장 동쪽 끝에서 한국보다 먼저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택시 안에서 포즈를 취한 알레산드로, 필자, 향란, 미란.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는 네덜란드 여성인 알렉산드라를 만났다. 역시 혼자 여행 와서 숙소를 구하고 있었다. 이름도 비슷한 알레산드로와 알렉산드라, 두 사람을 우리가 예약한 카사 파르티쿨라(Casa Particular, 쿠바 정부에서 허가한 민박집)에 데리고 갔다. 사람 수가 많아진 탓에 식사비를 포함해 방값을 깎을 수 있었지만, 알레산드로와 알렉산드라는 더블 룸(더블 사이즈 침대가 하나인 방)을 나눠 써야 했다. 하하하. 나도 여행하면서 남자랑 방을 나눠 쓴 적은 있지만 침대를 나눠 쓴 적은 없었는데, 역시 유럽인들은 대단했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의 거칠고 쌀쌀한 이미지 때문에 알레산드로는 필자를 철없는 아가씨쯤으로 취급했다. 즉, 짬짬이 괴롭히고 틈틈이 놀렸다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티격태격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 필자는 그의 작은 말에도 발끈하게 됐으며, 알렉산드로는 급기야 필자를 가방에 넣어 이탈리아로 데려가 우울할 때면 꺼내서 보고 싶다고 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는 거지?’

함께 있던 향란과 미란도 나의 편이 되어주지 않고, 심지어 알렉산드라까지 한패가 되어 나를 놀리게 되었을 때쯤 필자도 이 어이없는 상황을 즐기며 새해를 맞고 있었다.

새해 전날 마을 축제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의 여자들 모두는 끈적끈적한 쿠바 남자들의 목표물이 되지 않기 위해 너도나도 알레산드로의 부인이 되기를 자처했다. 부인이 4명이라…. 한마디로 복이 터진 사내였다. 필자가 진지하게 “우리는 이슬람교인이고, 난 당신의 두 번째 부인이야” 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바라코아 거리를 걷고 있는 알레산드로(오른쪽)와 필자.(왼쪽)◇쿠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체 게바라 벽화.

신나게 춤추는 사이 우리도 모르게 새해를 맞았다. 더운 날씨 때문에 실감은 안 났지만 그래도 새해는 새해. 서로 자기 나라의 새해 문화를 이야기하며 각자의 형식으로 인사를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절을 한다고 하자 알레산드로는 우리에게, 심지어 나무에도 술을 따라주며 절을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후 남미를 여행하는 내내 그에게 감사했다.

“아니따(필자의 스페인어 이름), 스페인어를 배워. 커뮤니케이션은 좋은 거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많은 것을 알 수 있어.”

사실 스페인어를 못해서 멕시코 여행부터 두 달째 반벙어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할 줄 아는데 왜 너만 못하냐’는 그의 말에 자존심이 확 상했던 터다. 친구들은 이곳에서 6개월이나 살고 있지 않았나! 그의 비웃음과 괴롭힘 덕분에 에스파냐어 학습에 대한 전의가 활활 타올랐음은 물론이다.

“알레산드로, 고마워. 어찌 됐든 네 덕분에 에스파냐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남미 여행이 훨씬 수월해졌어.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중요한 거야.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니 말이야. 비록 이탈리아어가 스페인어와 무척 비슷해 이탈리아인이 스페인어를 배우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걸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며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던 너를 정말 존경했었어. 한국 사람이 스페인어를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해? 우린 문법 자체가 다르다고!”

여행작가 (www.prettynim.com)



# 바라코아는 쿠바혁명 이후 다른 지역과 연결된 한적한 항구도시… 영화 ‘로빈슨 크루소’ 촬영지이기도

바라코아(Baracoa)는 쿠바 관타나모 지방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다. 1512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쿠에야르(Diego Velazquez de Cuellar)가 스페인군을 이끌고 이곳에 상륙해 ‘시우다드 프리마다(Ciudad Primada, 첫 번째 도시)’라고 이름지으며 정착했다. 즉, 이곳은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쿠바혁명 이후에서야 다른 도시와 연결되는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 전까지는 배로만 다른 지역과 연결이 가능했기에 거의 고립된 도시였다. 바이아 데 미엘(Bahia de Miel, 꿀 해변)이 길게 펼쳐져 있고 울창한 열대나무로 둘러싸여 한가롭다. 이곳에서 로빈슨 크루소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다.



# 여행정보

쿠바까지 직항은 없다. 대한항공·멕시카나항공을 이용해 멕시코 칸쿤으로 들어가 아바나행 왕복표를 끊거나, 에어캐나다를 타고 캐나다를 경유해 아바나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칸쿤과 아바나 왕복 비행기표는 300달러 정도이며, 쿠바에 들어갈 경우 여행자 카드가 필요하다. 이 카드는 비행기 표를 살 때 포함되어 있는데, 공항에서 20달러 정도에 별도 구입할 수도 있다. 쿠바는 이중화폐를 쓰는데 쿠바 페소(Peso)와 여행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CUC(세우세)가 있다. 1CUC는 1유로 정도다. 쿠바에서 신용카드 사용은 불가능하고 현금인출기도 없다. 호텔은 보통 100달러 이상이며, 배낭 여행자들은 주로 민박집인 카사 파르티쿨라를 이용한다. 보통 15∼25CUC인데, 쿠바에는 먹을 만한 곳이 별로 없으니 식사를 포함해 흥정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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