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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하위문화를 넘어선 K팝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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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10 22:55:43 수정 : 2025-07-10 22: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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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신드롬이 거세다. 소니 픽처스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제공한 이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넷플릭스 영화 1위에 오르면서 같은 날 미국에서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엘리오’를 관심권 밖으로 밀어냈다. 극 중 주인공 ‘헌트리스’와 ‘사자 보이스’가 부르는 OST 곡들은 실존 아이돌인 BTS와 블랙핑크를 넘어서면서 모든 곡을 빌보드 차트에 진입시켰고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이 가상의 소년, 소녀 밴드에 대한 강력한 팬덤도 형성되어 각종 챌린지, 커버 댄스, 밈, 굿즈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가히 초국적 신드롬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제작국이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는 점이다. 한국 출신의 매기 강 감독이 연출하고 K팝 최고의 전문가들이 제작 과정에 참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미국 영화이다.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1990년대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류는 음악, 드라마를 필두로 글로벌한 영향력을 넓혀갔지만 그토록 열망의 대상이던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한 서구권에서는 비주류 취향의 하위문화 정도로 여겨졌다. K팝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이고 타자화된 서구 주류의 시선은 K팝의 상업주의가 야기하는 획일성, 아티스트들의 노예계약 문제 등을 거론하며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 대중문화가 해외에 어필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혹시 이것이 우리 내부의 과장과 자화자찬이 부풀린 국뽕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해 왔다. 이 영화는 미국 주류 시스템 안에서 K컬처를 매혹적인 소재로 활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외부의 시선에서 K컬처를 수용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영화는 K팝 특유의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가득하다. 음악은 K팝 최고의 퀄리티를 갖췄고 극 중 아이돌의 공연은 따라 부르기 쉬운 후렴구와 칼군무로 상징되는 K팝 공연을 실제로 보는 듯 화려하고 강렬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K팝의 뿌리를 한국 전통문화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걸그룹 퇴마사인 ‘헌트리스’의 뿌리를 악을 물리치고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무속신앙, 굿에서 찾고 악령들에게는 전통 도깨비, 저승사자 이미지를 입힌다. 검은 갓에 검은 한복을 입은 ‘사자 보이스’는 영락없는 저승사자의 모습이다. 그들이 한복 아래에 가죽 바지를 입고 칼군무를 펼치는 광경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영화의 신 스틸러인 귀마의 메신저는 민화 작호도의 주인공인 까치와 호랑이에서 불려 나왔다. 이쯤이면 K컬처가 특정 지역, 계층의 하위문화를 넘어서 대중적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세계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K컬처가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해외 시선을 의식하지 않던 시기에 생산된 K컬처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인종차별주의적 시선, 가혹하고 획일화된 K컬처 생산 시스템하에서 어떻게 위축된 문화적 다양성을 지킬 것이며 인디 창작자들의 생존과 창의력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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