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1위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해킹으로 서비스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많은 이용자에게 불똥이 튀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예스24의 전자책 구독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한순간에 ‘마음의 양식’이 사라져버렸다.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소중한 일상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언제든 당연히 마음대로 펴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책들이 사실 내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당혹스러웠다. 전자책 단말기 구입 정보를 얻으려고 가입했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랜만에 들어갔더니 비슷한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내 돈 내고 샀는데 주인은 따로 있었구나”라고 한탄하거나 “평생 모은 전자책 1500권에 접근을 못 하니 전 재산을 날린 느낌”이라고 절규한 독자도 있었다. 자신을 아날로그 신봉자라고 소개하며 “이럴 줄 알고 전자책에 돈 안 쓰고 종이책만 수집해온 내가 진정한 승자”라고 자랑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전자책 서비스는 완벽하게 복구됐지만,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언젠가 또 이런 일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평소에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디지털의 배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디지털 음원 파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도래했다. CD에서 디지털 음원을 추출한 뒤 불법 사이트를 통해 공유하는 방식이 유행하다가 2000년대 들어 디지털저작권관리(DRM) 시스템이 도입돼 합법적으로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게 됐다. 초창기 DRM 음원은 다운로드 횟수에 제한이 걸려 있거나 지정된 특정 MP3 플레이어서만 재생이 가능한 ‘기기 귀속’ 방식인 경우가 많았다. 기기가 고장나거나 기기를 분실하면, 과거에 결제했던 음악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직접 찍어 올린 사진들이 송두리째 사라지기도 한다. 싸이월드는 대한민국 1세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2000년대 전 국민의 추억을 저장하던 창고였다. 2019년 10월 예고 없이 홈페이지 접속이 중단됐고, 지금까지 서비스가 재개되지 않고 있다. 불행하게도 대학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가족들의 환송을 받으며 군에 입대하던 날이나 아내와의 첫 데이트 순간을 기록한 사진까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반면 그 시절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직접 손으로 써서 주고받았던 편지는 상당수 살아남았다. 많은 것을 폐기하는 이사를 몇 차례 하는 동안에도 이들 사진과 편지만은 무사히 서랍 한쪽을 지키고 있다.
물론 디지털 환경이 미덥지 못하다고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갈 순 없다. 디지털 기술은 이미 단순한 도구를 넘어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의 편리함과 혁신 이면에 도사린 위험성을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 별도의 이중 저장장치를 마련하거나 기업 차원에서는 보안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스24 이전에는 2023년에 알라딘이 해킹당하면서 전자책 약 72만권이 유출되기도 했다. 근본적인 개선을 하지 않고 방치한 탓에 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기업이 보안을 소홀히 하거나 해킹 사고를 은폐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법과 제도를 갖추고, 처벌 규정을 명확히 하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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