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공간서 편지·댓글 인연 계속…해군 사이버추모관도 9만명 찾아

# “지난번 꿈에서 사주기로 했던 작은 가방. 누나 맘에 드는 걸로 골랐는데 우리 상민이 맘에도 들지 모르겠네. 가을이라 이쁜 남방들이 많이 나왔더라고. 너에게 어울릴 만한 걸로 골랐는데. 어때? 맘에 들어? 예쁘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누나 꿈에 놀러 올 때 입고 와. 알았지?”(고 이상민 하사 미니홈피, 2010년 10월15일 )
대한민국을 충격과 비통에 몸서리치게 한 2010년 3월26일. 그날 밤 승조원 104명을 태운 천안함은 ‘북한의 폭침’으로 두 동강 났고 우리 용사 46인은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천안함 폭침 1주년(26일)을 앞둔 가운데 날마다 가슴을 부여잡고 슬픔을 견뎌 온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형, 오빠, 동생, 애인을 한순간에 하늘로 보낸 유가족과 연인 등이다. 이들은 미니홈피 같은 가상공간에서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용사들을 매일 보듬고 있다.
고 정범구 병장의 어머니 심복섭(49)씨는 아들의 미니홈피를 관리하며, 한 달에 한두 번씩 아들한테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있다. “범구야 잘 있는 거지. 또 명절이 다가온다. 엄마 혼자 네게 음식을 먹이러 가야 하는데 또 눈물을 쏟겠지.” “요새 괜히 눈물이 절로 나 네게 글을 쓰고 간다…. 엄마 혼자 밥 먹고 살고 있어서 미안해.”
외아들을 향한 모성이 구구절절 묻어난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범구 어머니 힘내세요”,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등 심씨를 응원하는 추모객들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심씨도 아들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낯모르는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고 이상민, 강현구 하사, 조진영 중사 등의 미니홈피도 주인을 잃었지만 그 가족들의 따뜻한 손길로 온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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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1주년을 앞둔 22일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 마련된 천안함 46용사와 한주호 준위 추모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숙연하게 헌화하고 있다. 송원영 기자 |
미안함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가족들도 있다. 강 하사의 여동생은 “적어도 오빠가 해군 지원해서 간 거에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잘 알지 못해서 말리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하고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고 적었다. 조 중사의 여자친구는 “천안함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상처를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파. 언제쯤 내가 익숙해질 수 있을까”라고 괴로워했다.
지인들도 고인 홈페이지에 댓글이나 방명록, 일촌평 남기기 등을 통해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네티즌과 동료 장병들의 추모 열기가 해군이 운영 중인 사이버 추모관으로 몰려 9만여 명이 추모 글을 남겼다. 대부분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고귀한 뜻 잊지 않겠다’, ‘나라를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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