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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침묵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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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5-10 15:26:52 수정 : 2011-05-10 15: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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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작다. 보통 커뮤니케이션의 10% 정도만이 언어로 이뤄진다고 한다. 나머지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자세나 얼굴 표정, 외모, 의상, 장신구 등도 말 이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공간이나 시간도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요소다. 평소 친하던 사람이 난데없이 거리를 두기 시작할 때 여기에는 분명히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매일 한두번씩 연락하던 여인이 특별한 이유없이 두세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면 이도 애정이 식었다는 신호로 봐도 무방하다.

언어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는 뚜렷하다. 추상화, 단순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 반면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감정과 느낌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결국 말만 잘해서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다. 특히 침묵도 엄연히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는 서양속담도 있지 않은가. 침묵은 강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백 마디 비난보다 더 모욕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한편 침묵효과(mum effect)라는 용어도 있다. 침묵효과는 다른 사람에게 나쁜 소식이나 사실을 함구하고 전달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말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빈 라덴 사살 사흘 만에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했지만 연설을 하지 않고 묵념만 올렸다. 그러나 그의 침묵은 속담처럼 웅변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그라운드 제로 방문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해 연설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월 애리조나 총기난사사건 희생자 추모식에서도 연설 도중 51초 동안 침묵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 역대 최고의 연설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침묵할 줄도 알아야 한다.

1994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언어학자 다니엘 뒤에즈는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TV연설을 분석한 결과 연설 사이사이의 침묵이 어떤 미사여구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연설 도중의 침묵은 인쇄된 문장으로 치면 강조하기 위해 굵은 활자로 되어 있는 부분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걸핏하면 고성과 장광설로 국민을 피곤하게 하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침묵의 정치학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전천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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