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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우리 안의 폭력] '키 175cm 대졸자 환영' 조폭모집 광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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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9-16 15:32:14 수정 : 2012-09-16 15: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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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조직 '전통적 패밀리'서
티 안나는 '신세대 조폭' 으로
“키 175㎝ 이상, 미남과 대졸자 환영. 토익 및 토플 등 영어시험 고득점자 우대. 2년 인턴 후 정규직 채용.” 언뜻 보면 기업체 구인광고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2009년 서울 한남동 이태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폭력조직 ‘이태원파’의 조직원 모집조건이다. 얼굴에 흉터가 있거나 배가 출렁이면 “너무 조폭 티가 나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며 꺼렸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활동하는 신세대 조폭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태원파 조직원들은 철거현장에서 각목으로 인부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건물주를 협박해 수억원을 뜯어내는가 하면, 불법 도박장을 개장해 조직운영자금을 조달하는 영락없는 조직폭력배였다.

조직폭력배가 달라졌다. 전통적 조폭은 수십명의 조직원을 밑에 두고 거대 조직을 이끌며 그 위세를 과시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수사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좋게 작고 재빠른 ‘기동타격대형’ 조폭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이제는 조직원의 외양도 관리한다.

전문가들은 “폭력조직의 변화에 따라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면서 “새로운 조직폭력배에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팀제도 도입’…경량화·기동화하는 폭력조직

4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관리대상에 올려두고 정보를 수집하거나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는 조직폭력배는 올해 기준 전국적으로 5384명에 달한다. 여기다 준조직폭력배나 조직폭력배 의심자까지 더하면 8000명에 육박할 것으로 경찰은 추산하고 있다.

2010년대 조직폭력배는 이전의 주먹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우선 탄탄한 돈줄을 확보한 뒤에도 세를 불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과거 ‘3대 패밀리’로 꼽혔던 서방파, 양은이파, OB파가 어린 조직원을 모집하며 세 싸움을 벌이던 것과 대비된다. 지금은 조폭이라고 해봤자 기껏 20∼30명이 고작이다. 기동성 확보를 위해서다. 규모를 키워봤자 수사당국의 감시망에 걸려든다는 현실적 판단도 깔려 있다.

이들 신세대 조직폭력배는 가벼운 몸집을 갖고 ‘속도’와 ‘네트워크’로 영향력을 키워간다. 조직원 십수 명을 데리고 있는 행동대장급 중간간부 조폭이 여럿 대기하고 있다가, 호출을 받으면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일이 끝나면 바로 흩어진다. 일종의 ‘팀제’가 도입된 것이다.

본거지가 뚜렷하지 않다 보니 서울 및 수도권에서는 조직끼리의 구역 개념도 희미해지고 있다. 어린 조직원을 함께 숙식시키며 싸움과 도망 기술을 가르치는 합숙은 옛말이 됐다.

◆‘돈줄’에 따라 조직도 바꾼다

조직폭력배의 조직구조 재편에는 자금을 확보하는 수단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주요 원인이다. 옛날 조폭들이 유흥업소를 상대로 보호비 뜯어내기, 도박장 개장, 매춘과 인신매매를 주수입원으로 삼았다면, 신세대 조폭은 주가조작과 기업 인수합병, 대부업, 엔터테인먼트업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특정한 근거지를 둔 ‘기생형 사업구조’에서 첨단 금융기법과 마케팅을 사용한 ‘기업가형 사업구조’로 바뀌면서 조직규모가 거대화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 결과, 폭력의 작동방식도 달라졌다. 피를 튀기는 ‘사시미칼’ 대신 ‘은근한 협박’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흉기를 쓰면 수사당국에 걸리기 쉽고, 화이트칼라 층을 상대로 협박을 하는 상황에서 굳이 대놓고 주먹을 휘두를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철거·경비용역처럼 합법적 폭력용역업이 생긴 뒤로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폭력을 재하청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이권다툼이 치열해지면 이들은 종국에는 숨겨진 본성을 드러낸다. 지난해 10월 인천에서 벌어진 신간석파와 크라운파의 패싸움에서는 흉기로 허벅지를 찌르는 참극이 벌어졌다. 허벅지의 동맥이나 정맥은 끊기면 바로 사망으로 이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폭력양상이 바뀌면서 조직폭력배도 외부에 과시하는 브랜드가 중요해졌다”면서 “일부러 김태촌·조양은 같은 거물의 이름을 조직명에 넣어 세를 뻥튀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경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조직폭력배들이 네트워크화하면서 각자 일정한 지분비율을 갖고 이권에 개입하는 등 협력양상도 나타나고 있다”면서 “조직폭력배는 돈이 되는 곳은 어디든 뛰어들고 폭력적 속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사법당국은 지속적인 관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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