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충무로에서는 이정재(40)를 찾는 이들이 많다. 지난해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에 등극한 ‘도둑들’(감독 최동훈)에 이어 올해는 ‘신세계’(감독 박훈정)와 ‘관상’(감독 한재림) 두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이름 석 자 앞에 ‘흥행 배우’ ‘1000만 배우’란 타이틀이 붙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벌써 데뷔 20년 차가 돼간다는 그는 요즘 부쩍 연기의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지난 21일 개봉한 ‘신세계’에서는 말쑥한 정장을 차려 입고 나와, 18년 전 드라마 ‘모래시계’의 재희가 살아 돌아온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는 한다. 아직까지 ‘모래시계’ 운운한다는 게 변신을 거듭해야 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싫고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정재는 생각보다 ‘쿨’하고 솔직했다. “어차피 재희는 이정재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으니까” 그의 대답은 현명했다.
‘신세계’의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최민식·황정민 두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서 자칫 묻힐까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를 보고 무척 마음이 끌렸지만, 스스로는 물론 주변 사람들조차 “안 돼”라고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주변 분들의 우려가 많았어요. ‘조직에 잠입한 경찰’을 소재로 한 언더커버 영화이기 때문에 ‘무간도’와 비슷하면 어쩌나, 최민식·황정민 사이에서 이정재가 안 보이는 건 아니까 등등.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무간도’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고, 두 배우들이 오히려 도와주셔서 제가 돋보일 수 있었던 같아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작업이었죠.”

“영화 ‘오! 브라더스’(2003) 때부턴가. 한 5~6년 정도? ‘나 이런 캐릭터 아니면 안할 거야’라고 고집을 피운 적이 있었죠. 강인하고 멋진 남자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요. 나이가 들면 에너지 넘치는 연기가 아무래도 힘들어질 테니 지금 많이 해두자고 했었어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제가 원하는 블록버스터급 액션영화들은 많이 제작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죠. 그런 것들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마냥 기다린 게 좀 바보스러웠다고 할까요?”
이제는 강인한 캐릭터보다는 ‘변신에 대한 욕심’이 더 앞선다고. 자기 안에 숨겨진 면들을 연기를 통해 드러내고 극대화하는 ‘희열’을 좀 맛보고 싶어졌다.
그에게 작품 고르는 기준을 물어보니 첫째도, 둘째도 ‘시나리오’라고 답했다. 얼마나 탄탄한 구조인지, 누가 봐도 재미있는 스토리인지 여러 각도로 꼼꼼히 살핀다. 흥행 여부나 분량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도전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제 앞에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에서 최상의 것들을 선택한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제가 시나리오에 의해 발탁되는 거죠. 제 연기인생에 플랜(계획)을 짜놓고, ‘이 시점에서는 이런 작품을 해줘야 해’라는 식으로 전략을 세우는 건 상당히 위험할 수 있어요. 결국 연기자에게는 ‘캐릭터’가 가장 중요해요. 크레딧 순서나 분량 등은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죠. 캐릭터를 얼마나 잘 살려서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느냐가 바로 관건인 것 같아요.”
‘신세계’는 조직에 잠입한 형사 이자성(이정재 분)을 둘러싸고 베테랑 형사 강과장(최민식 분), 조직의 3인자 정청(황정민 분) 등이 펼치는 남자들의 음모와 배신, 의리 등을 담았다. 21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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