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은 청와대·방미단·현지기관 등의 관계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의문점이 크게 두 가닥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청와대와 주미 한국대사관, 워싱턴 한국문화원이 파장을 우려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기보다는 무마·축소·은폐를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윤 전 대변인의 방미기간 일탈이 11일 기자회견의 해명보다 수위가 높다는 것이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의 은폐·축소 의혹에 휩싸인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문화원의 모습. 한국문화원은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기관으로 대사관 공보기능도 맡고 있다. |
한국문화원은 소속 직원이 이번 사건을 미국 경찰에 신고한 데다 최초 보고를 묵살해 파문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미주 한인여성 커뮤니티사이트 ‘미시USA’의 한 이용자는 13일(현지시간) 오후 9시49분 ‘주미 대사관 한국문화원의 거짓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피해 사실을) 8일 아침에 최초 보고받았다고 하던데, 최초 보고는 7일 밤 (호텔바 술자리 직후) 받은 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숙소인 페어팩스)호텔로 돌아온 이후 피해자는 문화원 직원에게 성추행 사실을 최초로 알렸고 그 직원은 CP(임시행정실)에 있던 서기관에게 보고를 했다고 한다”며 “그 서기관은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덮으라’는 뉘앙스로 말한 것으로 안다”고 적었다.
최병구 문화원 원장은 “8일 아침 여성 인턴이 울고 있기에 대략적인 내용을 듣고 청와대 선임행정관에게 알렸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태의 심각함을 느낀 최 원장은 8일 오전 7시쯤 여성 인턴 A씨의 호텔 방을 찾아가 1분 정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7일 밤과 8일 새벽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진술을 청취하게 됐다. 최 원장은 곧바로 청와대 선임행정관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 뒤 그와 함께 다시 A씨 방으로 갔으나 2차 면담에는 실패했다. 최 원장은 A씨를 만나러 갔을 때 윤 전 대변인과 동행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언급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원과 함께 청와대와 주미 대사관이 합동으로 이번 사건을 덮으려한 움직임은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14일까지 드러난 정황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A씨는 8일(현지시간) 오전 6시쯤 페어팩스 호텔에서 윤 전 대변인의 호출을 받고 방에 올라갔다가 알몸을 보고 울면서 방을 뛰쳐나왔다. A씨와 방을 같이 쓴 문화원 여직원 B씨가 이 얘기를 듣고 분개해 오전 7시쯤 경찰에 신고했다.
이를 전후해 청와대, 문화원, 주미 대사관 측은 바쁘게 돌아갔다. 문화원 측은 사건을 파악해 방미수행단의 청와대 관계자에게 즉각 알려줬다. 또 윤 전 대변인이 귀국을 위해 덜레스공항으로 이동하는 차편을 제공했고 대한항공 워싱턴 지점에 전화해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의 차량을 몬 운전기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8일 오전 7시쯤 윤 전 대변인이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왔는데, 경찰이 출동해 하마터면 잡힐 뻔 했다”며 당시 아슬아슬한 상황을 전했다. 최 원장은 사건 무마·교통편 제공 의혹 등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방미수행단의 청와대 홍보팀 관계자들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퇴색하고 심각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은 만큼 수행단으로부터 윤 전 대변인을 격리하자는 논의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주미 대사관 측은 사건 파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A씨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게 종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귀국 항공편 예약을 대사관측이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의문의 남자 14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자택으로 남성 5명이 방문해 내용물을 알 수 없는 상자와 여행용 가방을 전달한 가운데 이들 중 1명이 기자들을 피해 황급히 자리를 피하고 있다. 김포=연합뉴스 |
윤 전 대변인 방에서 돌아온 뒤 A씨와 B씨는 격앙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방으로 찾아온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최 원장에게 문도 열어주지 않은 채 “경찰에 신고할 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윤 전 대변인 운전기사도 언론 인터뷰에서 “8일 아침 페어팩스 호텔 앞에서 A씨에게 전화했더니 다른 여성이 화난 목소리로 ‘이 학생은 이제 일 안 하니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교민사회에서는 피해 여성이 울 정도였다면 ‘심각한’ 일이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와 관련해 윤 전 대변인이 7일 밤 W워싱턴DC호텔 와인바에 이어 페어팩스 호텔방에서 A씨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2차 성추행을 가했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나왔다. 현지 소식통도 “떠도는 얘기로,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사실이 아니며 과장된 보도”라고 부인했다.
또 윤 전 대변인은 “7일 밤 운전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석한 상태에서 30분 정도 마셨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운전기사와 바텐더 등은 “2시간 넘게 술을 마셨고 자정이 가까워져 바가 문을 닫게 되자 호텔 로비 소파로 이동해 계속 마셨다”고 윤씨 주장을 반박했다.
김재홍 기자,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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