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위 대행 기업 전철연에 책임 있다 2009년 1월 19일 막 출근한 동료 기자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하마터면 쇠구슬(나중에 유리구슬로 밝혀짐)에 맞을 뻔했다”며 투덜거렸다. 무슨 얘기냐고 묻자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철거민들이 새총으로 마구 쏘아 가방을 머리에 대고 겨우 피해 왔다”고 했다. “경찰은?” 하고 되묻자, “구경만 하던데…” 하고 볼멘소리를 했다. 다른 기자는 “화염병도 던지더라”고 했다. 누군가 용산경찰서 정보과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일당 상황 아느냐? 무고한 행인을 위협하는 걸 놔두는 건 문제 아니냐”고 따졌다.
다음날 새벽 경찰은 대로를 지나는 버스에까지 화염병을 던지던 남일당 점거 농성장을 진압했다. 경찰특공대 1명 등 6명이 사망하고, 경찰 16명 등 23명이 부상했다. 민간인 희생자 5명 중 현장 세입자는 2명뿐이었다. 연행된 28명 중에서도 세입자는 7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전국철거민연합 회원인 타지인이었다. 용산사태를 풀 열쇠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용산사태는 논란 중이다. 유가족과 진상규명위원회는 진압을 승인한 서울경찰청장이던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쫓아다니며 출근 방해와 퇴진 및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다. 2009년 말 협상이 타결돼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보상비까지 받아냈으면서도 집요하게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건 현장을 포함한 용산4구역 약 300명의 토지주는 사태로 재건축이 늦어져 금융비용과 추가분담금 등 수천억원의 재산 손실을 입고 있다. 어제 다시 가보니 남일당은 철거됐고, 터 닦기를 하다 만 공터만 휑하니 방치돼 있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불편한 진실’을 공개한다. 유가족이 그렇게도 알고 싶어하는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금은방 남일당은 조카 돌반지를 고르던 곳이고, 2층은 종종 가던 맥주집, 3층은 단골 치과였다. 필자는 신문사 인근이라 4구역 주민을 많이 알고 지냈다. 분식점·구멍가게·노점상 주인부터 통닭집, 철물점, 세탁소 아저씨까지 가깝게 지냈다. 그중 일부는 재개발과 관련해 깊이 있는 상담도 했다. 직접 목격했거나 주민과 나눴던 이야기다.
사태가 터지기 1년6개월 전에 전철연이 용산에 들어왔다. 용산구민회관 앞에 천막을 친 전철연은 “우리가 책임지고 억대 이상씩 받아주겠다”며 연대를 권유했다. 보상금을 일정액 이상 받아내면 얼마씩 나눈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세입자들에겐 천사가 따로 없었다. 회비도 걷었다. 경기도 모처에서 민중 가요, 시위 방법, 계급론 등 이념교육도 시켰다. 타지역에 원정 시위도 다녔다. 하지만 보상 협상이 마냥 지체되고 동원이 잦아지자 세입자들은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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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 논설위원 |
그로부터 며칠 후 남일당사태가 터졌다. 전철연이 개입하는 곳은 대부분 참사로 이어진다. 1996년 신연숙씨 골리앗 추락 사망, 97년 민병일씨 폭행 사망·박순덕씨 골리앗 추락 사망, 2003년 상도동 컨테이너 추락 등등.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재개발이 확정된 곳에서 억대를 투자해 실내 장식을 새로 한 일부 세입자의 행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수몰 예정 지구에 사과나무를 심는 꼴 아닌가.
전철연은 세입자들에게 카드 빚을 내게 해서 망루를 만든다.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게, 즉 악다구니만 남게 한다. 막판까지 남은 세입자는 결국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직업시위꾼들인 전철연은 세입자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재개발 현장마다 개입해 먹고 사는 기업형 폭력시위 대행회사인 셈이다. 책임은 그들에게 물어야 한다.
조정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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