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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리포트] 장성택 처형과 심화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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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2-24 10:34:14 수정 : 2013-12-24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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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의 권력구조는 당·군·정 각 분야를 수평적 병렬관계에 놓고 자신이 직접 통치하는 방식이 정착됐다. 1997∼2000년 북한 전역에서 진행된 ‘심화조 사건’은 김정일의 결심에 따라 핵심 기관과 측근이 권력자 지위에 있다가도 언제든 그 칼에 휘둘리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와 탈북자가 속출했다. 이에 북한의 전반적 주민등록 현황 파악에 구멍이 생겼고 김정일은 기존 주민등록문건을 재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적 주민재등록 사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간부와 주민 가운데 6·25전쟁 당시 과거 경력의 문제를 숨기고 있던 이들이 드러났고, 김정일은 권력층과 일반주민에 이르기까지 전 주민의 출신과 경력에 대한 조사를 심화시켜 나갈 것을 지시했다. 이러한 김정일의 지시 내용을 지휘한 인물이 당 조직지도부에서 사법·검찰 부문을 담당하고 있던 장성택 제1부부장이었다. 장성택 지도하에 구성된 조직이 ‘심화조’로 불렸다.

심화조 활동은 애초 목적에서 벗어났다. 경력에 조금이라도 공백이 있는 이들은 ‘간첩죄’를 적용받았으며 숙청 칼날은 권부 핵심부를 겨냥하기에 이르렀다. 수많은 간부들이 당시 업무태도 문제와 연계돼 미국 또는 남한 정보기관 첩자 누명을 쓰고 처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 고위간부와 당원, 주민 등 총 2만5000여명이 대거 숙청됐다. 심화조 사건은 김정일 정권 출범을 앞두고 식량위기로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는 동시에 주민불만을 외부세력에 돌리기 위한 정치적 희생물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조작된 사건이었다.

심화조 조작 사건의 부작용은 심각했다. 북한 전역이 공포에 떨었으며 주민 민심은 더욱 악화했다. 이에 김정일은 다시 민심 수습차원에서 심화조 주동자들을 그 희생자로 삼는 결정을 내린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군 보위사령부를 동원해 심화조 사건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었던 채문덕 당시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을 ‘권력에 눈이 멀어 당과 대중을 이간시킨 야심가’, 또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몰아 숙청했다. 심화조 사건 종결 이후 김정일은 2001년쯤 사회안전부 명칭을 인민보안성으로 바꾸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숨진 문성술 당 책임비서 등 측근 간부였던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중앙과 지방에서 심화조의 악행을 폭로하는 군중강연회를 대대적으로 열어 악화된 민심을 다독거렸다. 장성택 처형으로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장성택을 쳐낸 세력에게 부메랑이 되돌아갈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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