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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속 고래' 국민연금] '쥐락펴락' 국민연금에 포획된 국민경제

입력 : 2014-08-10 18:47:40 수정 : 2014-08-11 00:3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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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자본시장 ‘쥐락펴락’… 지분 10%이상 대기업만 46곳
“이러다가 국민연금이 국내 거의 모든 기업의 주인이 될지 모릅니다.”(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언젠가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주식과 채권을 팔아야 할 텐데 누가 다 받아줄지 걱정입니다.”(김용하 한국연금학회장)

국민연금의 모든 문제는 ‘거대한 몸집’에서 비롯된다. 적립금이 정점에 달하는 2043년까지는 점점 커지는 시장 지배력이 문제, 기금이 감소하는 그 이후는 썰물의 충격이 걱정이다. 이미 금융시장,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존재감은 엄청나다. 시장 규모에 비해 몸집이 너무 커 ‘연못 속 고래’에 비유되고,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겐 ‘울트라 슈퍼갑’으로 통한 지 오래다.

◆가공할 시장 지배력

국민연금은 이미 수많은 대기업의 주인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 이상 지분을 확보한 대기업만 해도 만도(13.4%), 삼성물산(13.0%), CJ제일제당(12.7%), 제일모직(11.6%), 롯데칠성(10.3%), KB금융(10.0%) 등 46개사에 달한다. 지분 5% 이상을 확보한 대기업은 260개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어지간한 대기업에서 1대 주주, 또는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점점 늘고 있다.

금액 기준으로 주식투자 상위종목을 보면 투자액 15조5000억원으로 지분율 7.7%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차(4조원, 7.6%), SK하이닉스(2조4000억원, 9.3%), 포스코(2조1000억원, 7.5%), 현대모비스(2조1000억원, 7.5%), 신한금융(2조원, 8.8%), 네이버(1조9000억원, 8.0%), 기아차(1조5000억원, 6.7%) 등 굴지의 대기업을 망라하고 있다. 이런 터에 기금 규모가 급증하면서 국내 주식비중이 늘게 되면 국민연금이 국내 거의 모든 기업의 주인이 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국민연금의 시장 지배력 강화는 시장이 불안할 때 안전판이 될 수도 있으나 금융 불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지만 과도한 경영 개입으로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지배력이 커지고 배당 요구를 강화하는 등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면 지배구조, 투자전략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문제는 어떤 의도가 개입돼 비합리적 요구가 나올 경우”라고 말했다. 시장 교란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민연금 포트폴리오(분산투자구성) 노출로 기관과 외국인의 선행매매, 개인의 추종매매가 나타나 시장 질서를 왜곡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의 ‘울트라 슈퍼갑’


국민연금은 금융투자업계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국민연금이 나눠주는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물량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수십 개 증권사, 자산운용사들을 위탁매매 거래회사로 쓰고 있는데 등급에 따라 거래 물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금융사들은 사활을 걸고 뛴다”고 말했다. 등급이 내려가면 1년 매출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형사들은 덜하지만 중소 자산운용사는 국민연금 자산이 전체 운용자산의 80%까지 차지하는 경우도 적잖다”고 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굉장히 어려운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곳이 국민연금”이라고 실토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국내시장에선 영향력이 크니 슈퍼갑이네 하는 얘기들을 하는 것일 뿐 ‘갑질’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면서도 “업계에서 위탁운용사가 되기 위한 경쟁은 당연히 치열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운용자산이 워낙 크고 거래 금융사가 많다 보니 ‘웃지 못할 현상’도 벌어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똑같이 국민연금 자산 위탁매매를 하는 증권사끼리 국민연금 자산을 팔고 사는 모순이 흔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자기 자산을 스스로 팔고 사는 셈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규모가 큰 만큼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큰데 그런 문제까지 관여하면 위탁운용의 의미가 없다”며 “위탁운용사를 믿고 맡기는 것이며 우리는 위험관리만 하고 수익률로 평가할 뿐”이라고 말했다.

◆더 큰 걱정, 고래 퇴장 충격


국민연금 기금은 2043년 2600조원에 육박하며 정점을 찍은 뒤 급감할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로 연금 지급이 급증해 총수입보다 총지출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때부터 금융시장에 막대한 기금 보유자산이 매물로 쏟아지면서 시장을 뒤흔들 것이다. 멜팅다운(melting down), 즉 시장붕괴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물론 기금 규모가 커진 것 이상으로 금융시장이 성장해 매물을 모두 받아줄 세력이 있다면 미풍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희망사항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속도다. 남재우 연구위원은 “40∼50년에 걸쳐 축적된 기금이 십수년 만에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시장 충격이 재앙 수준일 가능성이 큰 이유”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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