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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난 5만원 냈는데, 넌 3만원?"

입력 : 2015-03-12 05:00:00 수정 : 2015-03-1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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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면 5만원 vs 봉투만 전하면 3만원…상호부조 아닌 '상호부담'이 된 경조사비의 명과 암

#1. 직장인 박모(33)씨는 직장동료의 결혼 소식을 접한 뒤 축의금 액수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라 축의금을 내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안하자니 사내에서 눈치가 보이기 때문. 박씨는 “친한 사이가 아니라 3만원만 할까 생각중”이라면서도 “한국의 겉치레 경조사 문화가 아쉽다”고 토로했다.

#2. 정부중앙부처 고위직공무원을 지낸 김길동(61·가명)씨는 이번달 경조사비로만 벌써 300만원을 썼다. 얼마 전 취업한 둘째 아들의 첫 월급보다 많은 액수다. 그는 “이제 현직도 아닌데 여기저기 챙겨야 할 경조사비로 정말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3월, 본격적인 결혼시즌에 접어들면서 지인들로부터 ‘세금고지서’라 불리는 결혼청첩장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물론 경조사비는 우리의 미풍양속이긴 하지만 가계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경조사비로 어느 정도 지출하고 있을까.

최근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인 이상 가구가 경조사비로 지출한 금액이 한 달에 21만1928원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에는 14만원이었고, 2009년에는 19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요즘 직장인들은 경조사비로 보통 얼마를 내고 있을까. 직장인 2명 중 1명은 직장 동료의 경조사 때 내는 적절한 축의금·부의금 액수로 3만원을 선택했다. 직장인의 70%는 축의금·부의금 문화가 필요하긴 하지만, 금액 수준을 줄여야 한다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고 응답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최근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7%가 직장 동료의 경조사 때 내는 적절한 축의금·부의금 액수로 ‘3만원’을 선택했다. ‘5만원’을 꼽은 직장인은 38.6%였고 ‘7만원’은 3.6%, ‘10만원 이상’은 2.2%였다.

경조사 참석 시 가장 힘든 점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54.8%는 ‘금전 지출’을 골랐다. 26.6%는 ‘주말 참석 등 휴식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택했고, 16.8%는 ‘가기 싫지만 억지로 가야 할 때’를 들었다.

축의금·부의금을 전달하는 문화에 대해선 29.2%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55.6%)은 ‘필요하지만 전반적인 금액 수준은 줄어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15.2%는 ‘축의금·부의금 문화가 없어져야 한다’는 속내를 밝혔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직장 동료가 경조사에 불참했을 땐 42%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8%는 ‘어찌 됐든 서운할 것’이라고 답했고, 23%는 ‘친분이 두텁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문항을 골랐다.

이처럼 얼마를 내야 할지 항상 고민되는 경조사비는 보통 친밀도나 본인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내는 게 일반적이다.

사실 경조사비로 얼마를 내야 할지는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친밀도에 따라 내기도 하고 현재 본인의 경제 형편에 맞춰 내기도 하며, 과거 본인이 받았던 만큼 내기 위해 방명록에 금액을 기입한 뒤 청첩장을 받으면 대조해 금액을 책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경조사비를 받은 사람이 이 금액을 놓고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A(31)씨는 동료 B(29·여)씨 결혼식 때 축의금으로 5만원을 냈는데, B씨는 A씨의 경조사 때 3만원을 할 경우 A씨 입장에선 내심 섭섭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결혼식 축의금은 5만원이 대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식사를 하면 5만원, 봉투만 전하면 3만원’이라는 불문율(不文律)이 있긴 하지만, 결혼식 축의금이나 부의금 모두 5만원을 내는 사람이 전체의 3분의 2쯤 된다는 조사도 있다. 대기업 CEO의 경우 최소 20만~30만원이 기본이고, 신경을 써야 하는 상대방이라면 100만~200만원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외활동이 많은 CEO는 1년에 경조사 비용으로만 1억원 넘게 지출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개인도 그렇지만 특히 기업들은 경조사비에 더욱 민감하다. 기업 입장에선 경쟁기업보다 경조사비를 덜 내게 되면,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걱정이 있게 마련이다. 돈 내고 뺨 맞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경쟁기업보다 많이 주지는 못할망정 같은 금액은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금융회사의 경우 임원 경조사비 지출 한도를 건당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렸다. 외부 경조사도 문제지만 회사 내부적으로도 임직원에 대한 경조사비는 상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누구는 많이 주고 또 누구는 적게 줄 수 없어 아예 노사간에 협약을 맺고, 직급이나 근무연한에 따라 금액을 정해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같은 경조사비는 우리의 미풍양속이긴 하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특히 수백명을 초청해 특급호텔 등 비싼 곳에서 치르는 수억원대의 호화결혼식과 같은 것들이 결국 경조사비 부담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밥값만 10만원을 호가하는 호텔 결혼식 초청장을 받으면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할지 난감하다며, 이 정도되면 상호부조가 아닌 상호부담이 되는 것”이라면서 “결국 비용을 낮추고 초청 대상을 줄여 꼭 와서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 위로해 줄 사람만 초청하는 경조사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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