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라라∼가 아니라 따아아라라로. 다시 한번 해보죠.” 지휘자의 말이 끝나자 바이올린 활이 일제히 미끄러진다. 같은 브람스 교향곡 4번인데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서울시립교향악단 객원 지휘자가 악보를 넘겨가며 미비점을 되짚는 중이다. 음악은 가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감상하는 맛은 덜하다. 대신 귀로 확인하게 된다. ‘지휘봉 하나로 음악이 달라지는구나.’


연습실은 불완전하다. 의상, 조명, 무대가 없고 실수도 나온다. 가끔은 지리하다. 발레 연습실에서는 팔다리를 10도 더 움직이는 것부터 얼굴 표정을 바꾸는 것 하나까지 꼼꼼히 점검한다. 그럼에도 연습실에는 본무대와 다른 색다른 재미가 있다.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 무용수·연주자의 땀을 직접 볼 수 있어서다. 이런 매력 때문일까. 공연단체들이 연습실의 속살을 공개하는 자리를 점점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7일 오후 7시30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리허설룸 콘서트’를 연다. 서울시향이 관객에게 공식적으로 연습실을 개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진행한 관람예약에서는 60석 전석이 일찌감치 마감됐다. 시향이 이날 연습하는 곡은 엘가 ‘세레나데’, 호프마이스터의 비올라 협주곡, 슈베르트의 교향곡 5번 일부. 최수열 부지휘자가 곡에 대해 설명하는 ‘서비스’도 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시민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리허설룸을 공개하게 됐다”며 “관객은 시향의 생생한 연습 현장을 보고 연주자들은 관객과 친근하게 소통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향은 이번 행사 결과에 따라 리허설 공개를 지속적으로 할 계획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금호월드오케스트라’ 시리즈를 통해 내한하는 세계 정상급 악단의 리허설을 2008년부터 공개해왔다. 2008년과 2013년 베를린필하모닉, 2010년과 지난해 뉴욕필하모닉, 올해 LA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 악단들이 공연 전 리허설을 보여줬다. 이 자리에는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과 소외계층 청소년이 주로 초청됐다. 이들의 꿈을 격려하고 무료 레슨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무용계는 일찌감치 연습실 공개를 통해 관객과 유대를 강화해왔다. UBC는 무용단체 중 가장 먼저 오픈 리허설을 실시했다. 2008년 3월 ‘지젤’을 시작으로 정기공연 연습마다 관객을 초대한다. UBC 라선아 차장은 “관객이 궁금해하는 비밀의 공간을 열어보임으로써 무용수들의 땀과 호흡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며 “무용수와의 거리가 확 좁아져 동작·표현이 더 와닿아서인지 처음부터 인기가 폭발적이었다”고 밝혔다. 선착순으로 마감되는 UBC 연습실 공개 행사에는 매번 100명 이상이 몰린다. UBC는 6일에도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그램 머피의 지젤’ 연습 현장을 공개했다. 조명과 무대세트를 갖춘 무대 리허설이었다. 관객 300여명이 자리를 채웠다.
국립무용단은 2013년 하반기부터 연습실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20명을 밑도는 인원이 모였지만 곧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모집 공고가 올라오면 몇 시간 안에 100명이 꽉 찬다. 국립무용단은 관객의 친밀감을 높이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미리 듣기 위해 오픈 리허설을 마련했다. 국립발레단도 언론 대상 리허설을 열 때마다 문화 소외 계층을 함께 초대하는 객석 나눔 행사를 갖고 있다.
연습실 공개는 관객과 무용수 모두에게 소중한 기회다. UBC 라 차장은 “관객이 연습복과 땀, 거친 숨소리를 접하니 작품의 깊이가 잘 전달되고 문훈숙 단장의 설명이 곁들여져 작품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고 하더라”라며 “무용수들 역시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연습을 공개하니 더 몰입이 되고 진지해진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국립무용단에서는 연습실 공개가 발전해 팬클럽 ‘춤사We’가 생겼다. 500명 정도가 가입해있다. 이들은 때로 무용수들의 도시락·음료까지 챙기는 등 든든한 지원군으로 자리잡았다. 국립무용단 관계자는 “무용수들이 관객을 피부로 느끼고 늘 나를 지켜보고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니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며 “무용수들에게 스타성이 생기면서 자기 관리를 더 철저히 하고 발전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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