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은 한·일 역사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일본을 최초로 통일한 야마토 정권이 4세기쯤 한반도 남부로 출병해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일본부’라는 관청을 두고 백제와 신라, 가야를 지배했다는 게 그 요지다. 국내에선 일제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왜곡한 식민사관으로 평가된다. 전남·북과 광주가 24억원을 들여 2022년 편찬을 마친 ‘전라도 천년사’의 배포가 여태껏 연기된 것도 임나일본부의 근거인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의 기술을 일부 차용한 데 따른 시민단체와 의회의 이의 신청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12월 경남 김해시는 7년에 걸쳐 인쇄까지 마친 ‘김해시사’ 15권 중 임나일본부설을 인용해 논란을 빚은 2권 ‘가야사편’을 결국 배포하지 않기로 했다.
제2기 한·일 역사공동위원회는 2010년 3월 ‘임나일본부’란 용어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데 양국 역사학자가 합의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두 나라 역사학자들이 2년5개월간 협업연구를 통해 내놓은 보고서를 기반으로 양국 공동 교과서 발간까지 기대하는 여론이 컸으나 물거품이 됐다. 일본 학교 교과서엔 여전히 임나일본부설이 실려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일부 교과서는 이 학설을 사실처럼 언급하는 등 지구촌 곳곳까지 퍼져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일본 나라 국립박물관은 개관 13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에 고대 한·일 교류사를 밝힐 열쇠인 ‘칠지도’(七支刀)를 전시했다. 가지 7개가 달린 이 칼은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 신궁(야마토 정권의 무기고)에서 전해 내려왔는데, 1953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 칼 앞·뒷면에 새긴 글자 60여자 중 일부는 읽어내기 힘든 상태인데, 이들 문구의 해석을 두고 일본 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설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물로 내세운다. 반면 국내에서는 백제가 당시 제후국인 왜의 왕에게 하사했다는 반론을 편다.
한·일 고대사를 둘러싼 그릇된 역사인식은 한쪽엔 삐뚤어진 우월의식을 심어주고, 다른 쪽엔 민족적 자존감의 조작된 상실을 강요할 뿐이다. 수교 60주년을 맞은 양국이 공동 연구를 통해 올바른 역사 정립에 협력하길 바란다. 약 10년 만에 공개된 칠지도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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