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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막말·심야촬영 다반사… '인권 사각' 아역 배우

입력 : 2015-07-29 19:40:27 수정 : 2015-07-30 20: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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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실수에도 "미친X"…배역 교체 두려워 항의 못해…대중문화예술법 시행 1년…제작사측 법 안 지키기 일쑤
29일은 청소년 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연예 기획사의 횡포를 막기 위해 도입된 ‘연예 기획사 등록제’도 1년간의 등록 유예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본격 시행에 돌입했다. 이를 계기로 그간 관심권 밖에 머물렀던 아역 배우, 아동 모델의 ‘착취’ 실태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미친 ×, ×발×….”

지난해 6월 공중파의 한 어린이 프로그램 방송을 촬영하기 위해 아들 A(8)군을 촬영장에 데려간 어머니 이모(33·여)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촬영장에서 아이들이 촬영 의도대로 움직여 주지 않자 카메라 감독이 아이들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마구 퍼부어 댔다. 아이들은 “저 아저씨 이상해”라며 울먹였고 부모들은 촬영 현장에서 불만을 제기했다. 하지만 촬영 주최 측에서는 어쩔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할 뿐이었다. 이씨는 당장에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이를 스타로 키우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촬영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부모는 “프로그램에서 잘리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야 한다”며 불평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아역배우 촬영은 더블캐스팅이 많다. 아이들은 갑자기 졸음이 밀려와 잠이 들 수도 있고, 표정을 관리하기 어렵기에 대부분 한자리에 두 명을 섭외해 촬영을 시작한다. 변수가 생기면 즉각 대처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캐스팅됐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촬영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

촬영 환경은 열악하다. 일주일에 30분 방송되는 분량을 찍기 위해 아이들은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에 걸쳐 새벽처럼 촬영장에 나가 자정 무렵까지 촬영한다. 아이들은 배고픔을 호소하지만 오후 3시까지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촬영을 강행하는 날이 많다.

학교생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난다. 학교 측에서는 1년에 19일만 체험학습으로 인정해주기에 나머지는 결석 처리된다. 더욱이 수업을 빠지는 날이 늘면서 A군의 성적도 곤두박질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씨는 “욕설을 들으면 너무 억울해 눈물도 나지만 아이를 다독여 끝까지 촬영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며 “청소년은 심야 시간에 촬영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고 하는데 이를 지키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공중파의 주말드라마를 촬영한 적이 있는 A군의 어머니는 “큰 그릇을 들고 뛰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이가 ‘그릇이 허벅지에 자꾸 부딪혀서 아프다’고 하소연했더니 조연출이 ‘이 새끼야 뭐가 아파’라고 윽박질렀다”며 “하지만 촬영장에서 잘못하면 감독이 바로 전화를 걸어서 ‘왜 이런 아이를 캐스팅했느냐’고 소리 지르고 즉시 교체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달리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촬영장에서의 욕설과 막말 등 인권 침해 행위는 청소년 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아동의 보호자는 친권자이지만 촬영장이나 작업장에 들어가면 작업장의 책임자가 보호자가 된다”며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거나 가혹행위를 하면 청소년 보호법상 학대 혐의로 법적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법에 호소하는 부모는 없다. 호소하는 순간 연예인이 되겠다는 자녀의 꿈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심야 촬영 금지 조항 있으나 마나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하 대중문화법)은 촬영 현장에서 19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촬영을 금지하고 있으나 이 조항은 시행되자마자 현장에서는 ‘사문화(死文化)’됐다. 아역배우 이모(6)양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촬영 가능한 시간을 법으로 정했다고 하지만 지켜지는 걸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역 배우 촬영이 오후 10시부터 시작하는 일도 있다. 드라마와 영화 수십편에 출연한 아역배우 B군의 어머니는 “100부작짜리 일일연속극을 촬영할 때는 아이가 대략 밤 10시부터 촬영에 들어가서 보통 오전 1시에 끝나곤 한다”며 “길어지면 다음날 새벽 5∼6시까지 촬영장에 남아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촬영 일정 자체가 제작진이나 성인 배우 중심으로 짜여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제작진 측에서 보호자에게 동의서를 받아 촬영하는 사례가 있지만 이것도 불법이다. 15세 미만의 청소년은 다음날이 학교 등교일이라면 보호자 동의가 있더라도 심야 촬영을 할 수 없도록 대중문화법은 규정하고 있다.

◆촬영과 수업, 양자택일해야 하는 아역 배우


장시간 촬영이 아무런 제동 없이 이뤄지는 탓에 아역배우인 아동은 대체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1∼2년 만에 아역 활동을 그만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역 활동을 접은 C군의 어머니는 “입학 전부터 활동했는데 초등학생이 되면서 일주일에 2∼3번씩 결석하게 돼 학교생활 적응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며 “본인 스스로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 보내고 싶다’고 말해 더 시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아역배우를 하려면 학교를 완전히 등져야 한다. B군의 어머니는 “교육방송이라는 EBS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도 아이 학습권을 위한 배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주위에서도 아예 학교를 벗어나 검정고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아직 직업관이나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가 보편적인 교육권까지 침해당하면서 성인과 같은 처지에서 방송 활동을 하는 건 커다란 위험 부담을 지는 것”이라며 “사춘기 이후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분명 정신적 혼란이나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승환·이재호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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