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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중견기업을 퇴직한 김모(62)씨는 일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지만, 자녀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하면서 남은 재산은 수도권 연립주택 한 채가 전부다. 김씨가 퇴직하자 평소 살림만 하던 아내 박모(60)씨도 일자리 찾기에 나섰다. 이제 막 취업한 자녀가 둘이나 되지만, 그들에게 손을 벌리긴 어려워서다. 박씨는 “애들이 취업해서 밥벌이는 하지만 결혼자금도 모아야 하는데 손을 벌릴 순 없지 않느냐”며 “어떤 부모들은 취직한 자식들이 결혼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용돈을 주기도 한다더라”고 말했다. 김씨 부부가 일자리를 찾아나섰지만 자녀도 선뜻 말리지 못했다. 김씨는 “100세시대라는데 퇴직한 60대는 암담하다”며 “남은 인생을 위한 준비도 없이 60대를 맞이했다”고 한탄했다.
예전에는 김씨 부부와 같은 60대가 ‘노인’이었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역할이 ‘중년’에 가까워졌다. 가정에서는 여전히 자식들을 책임지고 경제활동을 이어가는 등 중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40대가 하던 일을 60대가 하다 보니 그들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박씨는 “내가 벌써 노인인지 잘 모르겠다”며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데도 사회가 나를 노인으로 단정지어 버렸다”고 말했다. 일찍 노인이 되어 버린 박씨는 “빌딩 경비원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쉽지가 않다”며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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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고 있는 ‘늙은 캥거루’
60대가 서럽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60세 이상을 노령연금 수급권자인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다.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한모(60)씨는 얼마 전 자식들로부터 환갑잔치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을 듣고 손사래를 쳤다. 주변 지인들도 환갑잔치를 지나친 탓이기도 하지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식들에게 환갑잔치를 대접받으려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한씨와 같이 60세가 넘어서도 독립하지 못한 자녀와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들에게는 자녀세대의 취업난까지 더해져 ‘늙은 캥거루’가 된 셈이다.
서울시의 ‘통계로 본 서울 가족구조 및 부양변화’에 따르면 2013년 60세가 넘어서도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는 45.2%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자녀의 독립이 불가능하거나 도움을 주기 위해 함께 사는 경우가 46.5%로 가장 많았다. 자녀와 함께 살지 않는 60대의 경우 자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라는 응답이 23%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60대의 경제활동인구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연보’에 따르면 2013년 서울시에서 60대의 경제활동참가율은 35.2%, 고용률은 34.3%로 나타났다. 2010년에 비해 각각 2%와 2.6%가 늘었다. 반면 실업률은 매년 감소해 2010년 4.3%였던 것이 2013년 2.4%로 1.9% 감소했다. 특히 전체 연령대 중에서 60세에서 64세까지의 고용률이 2013년 54.6%로 가장 많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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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이 늘었다고 해서 60대의 삶이 윤택해진 것은 아니다. 60대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이다. 이들은 은퇴연령에 해당되지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노후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도 평택에 사는 박모(68·여)씨는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도 독립해 홀로 노후를 맞이하고 있다. 혼자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지만, 40대부터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어 마땅한 직업을 찾는 것도 어렵다. 박씨는 “소일거리를 하며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몸이 아픈 것이 제일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 죽든 자식들에게 병원비 부담을 주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박씨의 건강에 대한 걱정도 경제적 문제와 얽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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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유심히 살피고 있다. 연합 |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식들을 부양하고 노후준비를 모두 해야 하는 60대의 가장 큰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일자리가 문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60대 이상의 노년들은 근로소득이 급격히 낮아진다”며 “이들을 위해 안정적인 연금제도와 근로환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할 수 있는 연령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임금피크제가 의미 있을 수 있다”며 “60세를 넘어선 노인들이 일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usu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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