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전경. |
총선이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은 일제히 ‘선거 모드’에 돌입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연말 행사와 의정보고회 등을 통해 지역구민들과의 스킨십을 넓혀가고 있고, 선거에 뛰어든 ‘정치 신인’들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발품을 파느라 녹초가 될 지경이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각 정치세력들은 선거를 앞두고 정책공약들을 쏟아낸다. 이 과정에서 표만 얻을 수 있다면 강이 없어 필요 없는 다리도 새로 만들고, 멀쩡한 보도블럭도 두 번 세 번 뜯어낸다. 이것이 바로 ‘포퓰리즘’ 이다.
이러한 포퓰리즘이 군에 적용되면 안보분야의 정책을 표를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변질돼 군을 ‘군(軍)퓰리즘’으로 뒤틀어놓을 수 있다.
◆ 천정배 “제대 병사에 퇴직금 1000만원 지급”
천정배 의원이 창당을 추진하는 ‘국민회의’는 지난 23일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병사들에게 ‘전역 퇴직금’으로 10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천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국민회의 박주현 정책위원장 등과 함께 ‘청년 군 복무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역 퇴직금과 함께 군 복무 기간을 현재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박 정책위원장은 “한 해 제대 병사가 25만명인데, 1000만원씩 지급하면 2조5000억원이 든다”며 전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따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육군 기준 21개월인 군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고, 입대 시기를 학기 초로 조정해 대학 휴학기간을 3학기로 최소화하자고 주장했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 |
중장기적으로는 군복무기간을 12개월까지 단축시키고, 복무기간 연장을 원하는 사람에 한해 연장기회를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복무기간을 연장하면 직업군인에 준하는 지위와 임금을 보장하는 방안 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병력 공백이 우려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박 위원장은 “국방부가 2020년까지 병력을 줄인다고 계획했다”며 “군복무기간을 3개월 단축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으로 12개월 단축하는 경우에는 병력 감축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軍 “복무기간 단축? 현실을 모르는 소리”
국민회의의 정책 발표를 접한 군 관계자들은 “정치권의 일”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군 관계자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라 군 규모를 줄여도 2020년대 초반부터는 ‘인구절벽’으로 매년 2만3000여명의 병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복무기간을 12개월로 줄이면 병력이 얼마나 부족할지 가늠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도 복무기간 연장을 선택하는 병사의 처우를 직업군인 수준으로 높이자는 의견에 대해 “병사로서 복무기간을 연장하느니 부사관으로 입대하는 것이 소득과 혜택 측면에서 훨씬 낫다”며 “부사관보다 못한 처우를 받으며 3~4년 복무할 병사가 어디있겠나”고 지적했다.
현재 육군 기준으로 21개월의 의무복무 기간을 채운 병사는 9개월을 추가 복무하는 ‘유급지원병’ 제도를 선택할 수 있다. 입대 당시부터 30개월 복무를 약속한 병사는 의무복무기간이 끝나면 나머지 기간 동안 월 200만원의 급여를 받으며 숙소를 제공받는다. 하지만 “급여가 낮고, 경력 단절이 걱정된다”며 의무복무기간이 끝나면 대다수가 전역해 실제로는 30% 수준밖에 운영되지 않는게 현실이다.
2014년 10월1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행진하는 장병들(자료사진) |
병사 복무 기간 단축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신병훈련기간을 제외하고도 병사를 숙련시키는데 최소 9개월, 기술병은 최대 15개월이 필요하다.
단기복무 장교와 부사관 지원율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2007년 병사 복무기간을 24개월에서 18개월로 줄인다고 발표했을 때 2008~2009년 육군 학사장교 지원율은 2007년 1.7:1에 크게 못미친 0.7~0.8:1을 기록했다.
◆ 군제 개편은 국방정책 핵심···포퓰리즘식 정책은 금물
이같은 현실적 문제가 존재하는데도 정치권이 군복무기간 단축 카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도 군복무기간 단축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처음에는 복무기간 단축을 공약에서 제외했다가 대선 전날 유세에서 “(임기 내)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젊은층을 지지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 2012년 대선에서 1990년대생 남자 유권자는 약 150만명 정도였다. 대선에서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했던 1990년대생 남자들은 군 미필자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이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무시할 수 없는 ‘표심’이 작용한다.
특정한 공약이나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유권자들의 응집력은 무섭다.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39만여표 차로,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57만여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복무기간 공약에 따라 움직일 표가 당락을 충분히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자동개표기를 시연하고 있다. |
때문에 선거마다 군복무기간 단축, 징병제 폐지, 모병제 도입 등과 같은 공약들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군의 제도를 개편하는 작업은 지정학적 특성, 국민적 합의, 미래의 안보 위협 등을 고려해야 할만큼 복잡하다. 군이 안고 있는 문제를 ‘돈과 시혜성’으로 해결하려 하고, 군 복무기간을 ‘낭비적 시간’으로 바라보는 ‘군(軍)퓰리즘’으로는 국방개혁을 완수하기 어렵다.
미 정치권은 미군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법을 만들어 군을 압박했다. 1986년 제정된 ‘골드워터-니콜스’ 법은 합참의장 권한 강화, 합동참모특기 신설, 합동전문교육 실시 등 합참조직을 파격적으로 강화시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이 법은 미군이 합동성을 발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이 ‘골드워터-니콜스’법 만큼의 국방개혁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인기에 영합했다’는 비판을 받을 정책공약은 지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문민우위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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