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되는 정년 60세 연장의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임금피크제, 정년연장 논란의 피크로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정년보장 또는 정년 후 고용연장)하는 제도다. 정년연장으로 근로자의 노동기회가 늘어난 만큼 기업의 임금 부담도 덜어줘 서로 ‘윈윈’하자는 취지다. 근로 수명 연장과 임금 삭감을 맞바꾸는 것이다.
한 대기업의 오모(54) 부장은 “정년이 60세로 늘어난다고 해도 임금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성과급과 수당이 하락하면 생활비 부담이 걱정”이라며 “각종 대출금이나 연금, 보험료, 자녀 교육비 등 나가야 할 돈이 많은 때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의 ‘임금피크제 도입 일반모델안’에 따르면 임금피크제에 접어든 은행원은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을 때보다 연평균 50%, 보험업 종사자는 25~30% 깎인 임금을 받아야 할 것으로 전망됐다. 금융업 전체로는 39.6%의 하락폭이다.
유주선 신한은행 노조위원장은 “돈 쓸 일이 많은 중견 근로자의 경우 임금피크제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골치가 아프긴 마찬가지다. 국회는 2013년 4월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내용의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처리하면서 임금피크제 관련 규정은 명문화 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임금 삭감 등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바꿀 경우 근로자 절반 이상이 가입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와 임금 조정폭은 사업장별로 노사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경영자 측은 정부와 국회가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의무화하지 않고 정년 60세만 보장하도록 한 것은 성급한 결정이라고 지적한다. 한 정유업체 임원은 “정년 연장은 기업들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며 “퇴직할 근로자들의 고용을 연장하는 게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데다 청년 일자리도 확보해야 하는 만큼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달 ‘임금피크제 지원금’ 등의 내용을 담은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올해부터 정년 60세가 의무화되는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해 1인당 연간 1080만원 한도 내에서 피크임금보다 10% 이상 낮아진 금액을 지원하도록 했다. 지원금 대상은 18개월 이상 계속 고용된 55세 이상 노동자이며,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감액된 소득이 연 7250만원 미만이어야 한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장년층의 임금을 깎고 고용연장을 한다고 해서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할지는 미지수”라며 “임금이 줄어든 장년층 근로자가 퇴물 취급을 받지 않고 계속 활약할 수 있도록 기업문화의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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